어제가 입춘이었다. 24절기의 맨처음인 이날에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고 써 붙이는 것은 태평과 번영,부귀 장수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다.그러나 오래전부터 그랬듯이 올해에도 우리의 입춘은 「대길」의 춘축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질 만큼 태평하지 못하고 어수선하다. 의원들의 뇌물외유,대입시부정사건에 이어 수서지구 공영개발택지 특별분양을 둘러싼 의혹과 불신이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전국에 테러비상까지 걸렸다.
점차 걸프전쟁에 발목이 빠져 들어가는 우리나라는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 의해 29번째 다국적군 참가국으로 지목되면서 테러 대상국이 돼 버렸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미군기지를 폭파하겠다는 협박이 4건 있었다. 최근 이라크에 다녀온 일본 적군파 8명이 아시아에서 테러를 획책중이라는 정보는 우리를 노리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갖게 한다.
치안본부에 의하면 전세계 71개국 5백74개의 테러조직 중 중동지역에만 18.6%인 1백7개 조직이 있다. 우리를 노리는 조직이 그들 중 어느 것인지는 모르지만 모든 테러리스트가 그렇듯이 그들에게도 대의명분은 분명하다. 대의명분을 앞세운 폭력적 공격행위에서 가장 우려되는 일은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과 피해일 것이다.
「현대의 테러리즘은 국제문제이며 기밀과 요원을 서로 교환하는 수출입 성장산업」이다.
F·J·해커라는 미국의 정신분석 의사는 「우리시대의 테러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저서에서 테러를 인간정신에 대한 강간행위라고 규정하고 테러는 기존질서가 인간을 파괴하거나 자신을 비롯한 인간들에게 불의를 행하고 있다는 분노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또 테러리즘은 부패 배신 위선 폭력 부정에 의해 조장되며 비판적 지식인들의 묵인과 방조가 있을 경우에 더욱 번창한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의 우리 사회를 두고 하는 말 같다. 폭력이 판치고 사회 구석구석 안 썩은 곳이 없는 것같고 거짓말쟁이가 아닌 사람이 없는 것같고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인명살상,파괴,방화가 아니더라도 불안감을 일반화시켜 다중을 지배하는 일체의 행위가 곧 테러라면 우리의 상황은 테러의 온상인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한다.
외국인들에 의한 테러도 철저히 경계해야 하겠지만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고 장기적으로 해결을 위해 진력해야 할 것은 안으로부터의 위협이라고 생각된다.
다시 해커 박사의 말을 베끼면 신뢰와 공정,비폭력에 대한 믿음을 증대시켜야 테러리즘은 억제되며 폭력적인 직접행동을 치유하는 대안은 사회개혁이다.
우리 사회는 그런 개혁을 위한 태세나 준비가 돼 있는가. 안팎의 위협은 「입춘불길」의 불안을 안겨주면서 우리에게 이 질문의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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