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여전히 뇌물외유사건의 와중에 있다. 이틀째로 접어든 국회 각 상임위의 활동에서도 사건의 한랭전선이 바닥에서부터 휘감고 있음을 느끼기에 어렵지 않다.의원들은 확실히 위축돼 있고 눈에 띄게 자조적이며,일부 의원들은 정치권을 향해 쏟아지는 손가락질에 심한 자존심의 손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래서 개개인의 의원들을 대하다 보면 때로는 무척 안쓰럽기조차한 게 사실이다.
반면 지난 31일 국회가 보여준 두 가지 행태는 의원들의 속깊은 곳에 겉으로 드러난 자정분위기와는 정반대 방향의 반동기류가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 첫째가 의원윤리강령 제정을 다음 회기로 미루려는 위약의 후안무치이고,또 한 가지가 이날 마감된 의원들의 재산변동신고율의 저조한 실적. 31일은 더구나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이틀간 정당대표연설을 통해 「뼈를 깎는 자성」을 외쳤던 바로 다음날이다. 김 대표는 특히 의원윤리강령의 실천적 뒷받침,즉 국회법 개정까지 다짐했었다.
상공위 세 의원에 대한 정부의 체포동의안 제출을 보류시켜 큰 고비를 넘긴 정치권이 자숙의 첫 징표로 내세웠던 게 박준규 국회의장의 대국민사과회견과 더불어 의원윤리강령 제정이었다. 그런데 윤리강령제정위원회가 선언적 윤리강령 외에 그 실천규범과 국회법 개정을 다음 회기로 미루려는 이유는 「시간부족」이다.
정치권이 스스로 윤리강령을 제정하겠다고 나선 지난주초 이를 선언적 강령제정으로만 이해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의원들의 비도덕적 행태가 사회적 지탄을 받을 때마다 정치권이 불쑥불쑥 여론의 방패막이로 써먹어왔던 게 의원윤리강령 제정 다짐이었지만,이번만은 현역의원 3명의 구속문제까지 걸려 충격이 컸던만큼 더욱 그랬다. 자정의 노력에서 실천적 강제규정이 중요한 것은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이는 재산변동신고율이 46%에 불과한 이유가 신고기피를 제재할 수단을 구비하지 못한 법적 허점 때문이라는 데서도 그대로 입증되고 있다. 아이에게 매가 필요한 같은 소이로,우리의 선량들에게서 강제규정이 필요없는 자발적 윤리의식을 기대하기란 뇌물외유파동의 값비싼 교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득하다는 사실을 두 사례에서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여론의 냉혹한 이반을 당하지 않기 위해 시간이 부족한 것은 오히려 정치권 자신임을 그렇게도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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