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상승·외교고립 탈피 성과/미 완승땐 피해우려 「대피」 묵인/종전 외교노력서 결정적 캐스팅보트 행사 가능성이라크 공군기 1백여 대가 이란으로 대피한 것이 확인된 가운데 사담·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한 사둔·하마디 이라크 부총리가 31일 테헤란을 방문,걸프전에서 중립을 선언했던 이란의 움직임이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이란 언론들은 사둔·하마디 부총리의 방문이 이라크 공군기들의 이란 대피를 해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란은 이 기회를 이용,걸프전 종식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 알제리 예멘의 고위관리들도 테헤란에 속속 도착했으며 미NBC TV는 이들이 걸프사태 해결을 위한 긴급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보도,이란의 역할이 한층 주목을 끌고 있다.
현재 이란에는 1백여 대의 이라크공군기와 몇 척의 함정이 대피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정예공화국수비대 병력도 이란으로 대피할지 모른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미 정보당국은 이란이 1백여대 스커드미사일 발사대를 이라크에 판매할 가능성을 시사,이란의 속셈에 대한 의혹을 던지고 있다.
이 같은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걸프전에 따른 이란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란은 걸프사태 초기부터 공군기 등 이라크군의 상당한 전력이 이란으로 집결한 지금까지 엄정중립을 계속 다짐해 오고 있다.
즉 이란의 기본입장은 8년 전쟁을 치른 견원지간인 이라크와 그들의 회교혁명을 위협하는 미국 중 어느 한 쪽도 지지·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란은 이번 사태에 중립을 견지함으로써 이미 상당한 정치·경제적 실리를 거두고 있다. 먼저 이라크와는 평화협정을 체결,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았고 샤트 알 아랍강의 사용권을 얻어냈다. 또 유가상승으로 경제재건에 필요한 경화수입을 대폭 올렸다.
서방측으로부터 받은 혜택도 적지 않다. 영국 등 일부 서방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재개했고 서방기업의 투자와 차관제공이 증대,8년 전쟁으로 침체된 경제가 눈에 띄게 활기를 되찾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성과는 79년 회교혁명 이후 외교적 고립상태에 빠진 이란이 이번 사태를 통해 국제적 신뢰를 회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30일 파드 사우디 국왕이 이란과의 국교 재개를 시사한 것은 그 상징적 실례로 이란이 중동의 중추세력으로 재부상하고 있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란이 굳이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 이같은 「양손의 떡」을 스스로 포기하고 걸프전에 휘말려들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이란 권력층 내부에는 이슬람 성전을 주장하는 강경파 종교지도자 그룹과 엄정중립을 주장하는 온건세력간의 노선투쟁이 계속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대세는 라프산자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온건세력이 장악하고 있으며 걸프전 이후 이들의 입지는 한층 강화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이란의 보다 깊은 속셈은 이번 전쟁에서 어느 한 쪽을 지지하지도 않지만 더 나아가 어느 한 쪽이 일방적 승리를 거두는 상황도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란은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할 경우 중동지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력재편이 이루어지고 그러한 새 질서의 최대 희생자는 이란 자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또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다면 이라크북부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해온 터키나 아랍권에서 헤게모니를 노려온 시리아,이집트 등이 세력확장을 기도할 것도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이란은 터키의 개입이나 걸프전이 미국의 완전 승리로 끝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전력의 대피를 묵인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즉 이란은 당분간 이라크 공군기들을 「억류」할 것이지만 전세가 미국측으로 완전히 기울 경우 이라크공군기를 방출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란이 이스라엘이 전쟁에 개입할 경우 이라크 편에 서서 회교성전을 벌이겠다고 경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한편 이란이 걸프전 종식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펼치고 있는 것도 이번 전쟁이 미국 주도의 서방측 승리로 끝나는 것을 막기 위한 계산된 노력인 것이다.
이란의 이 같은 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이라크군의 대거 대피로 이란이 이번 걸프전에서 결정적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의외의 성과가 나올 수도 있다.
과거 이란의 숙적이던 이라크와 미국이 협조를 얻기 위해 이란에 매달리는 현 상황은 이번 걸프전의 복잡미묘한 성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배정근 기자>배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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