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는 비리 「중개인」… 자릿세 거액/박사에게도 “2억 내라”/채용땐 레슨비 폭등… 그래도 보신 전전긍긍/선후배 서열 엄격 제자 지원대 「위」에서 조정예체능계 입시부정에는 대부분의 경우 대학강사들이 개입된다. 개입된 강사들은 금품수수로 이루어지는 비리의 핵심적 연결고리 역할을 맡는 게 통례이다.
힘들게 해외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대학의 시간강사 자리라도 얻으려고 애쓰는 젊은 예술인들은 강사가 된 교수,학부모와의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또는 그 자신이 돈이 필요해서 비리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 강사로 채용될 때부터 그들은 부패한 현실에 회의와 갈등을 느끼다가 살아남기 위해 순응,안주함으로써 비리에 합류하거나 부정에 적극적인 장본인이 돼간다.
3년 전 D대 미대 전임강사가 된 김 모씨(35)는 『예체능계 전임강사 자리는 다른 일반학과와 마찬가지로 돈보따리 없이는 따낼 수 없다』고 말한다.
김씨 자신은 아버지와 지도교수의 친분 덕분에 3분의2 정도로 액수를 줄였지만 미대 시간강사가 되려면 추천권을 가진 지도교수에게만 2천만∼5천만원,시간강사에서 전임강사가 될 때에도 합격권이면 5천만원,비합격권이면 1억원이 든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만장일치로 결정되는 전임강사 채용에서는 힘겹게 자리 약속을 받은 뒤에도 식사·술 대접으로 수백 만 원이 더 필요하다.
자리가 한정돼 80년대말 이후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더 어려워진 음대 기악과의 경우에는 시간강사가 되려면 최소한 1억원을 관련교수에게 바쳐야 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신임 교수 채용과정의 금품수수는 학연으로 연결된 교수와 사립대 재단에 의해 공공연히 자행된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몇 차례 연주회도 성공을 거둬 실력을 인정받은 비올라 전공의 H 모씨(38)는 최근 모교인 국내 사립대에 전임강사로 가고 싶다고 의사를 타진했다가 스승으로부터 『재단측이 2억원을 요구하면서 「없는 자리지만 만들어 보겠다」고 하더라』는 말을 듣고 귀국을 포기했다. H씨는 『88년 이후 귀국한 동학들이 배경과 돈을 찾아 동분서주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 현실이 나에게 닥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월간 「음악저널」 발행인 이남진씨(46)는 『진학관련 입시부정,교수채용에 따른 인사부정,연주회관련 부정은 뗄래야 뗄 수 없이 맞물려 있는 음악계의 3대 비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막대한 돈과 연줄로 대학에 발을 붙인 강사들은 자신이 쓴 돈이 헛된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더 큰 소득을 위한 예금」이라고 생각하게 되며 잃은 것을 거두기에 골몰하게 된다. 교향악단의 단원이었다가 대학 시간강사 자리라도 얻게 되면 레슨비는 3∼4배로 폭등한다.
입시생 학부모들과 줄이 닿아 있는 교수들은 신참강사들을 『실력있는 애제자』라며 사례비를 받고 소개해주고 학생들을 할당해준다.
시간당 5만∼10만원이던 C급 레슨료는 단번에 20만∼30만원으로 뛰어오르고 학생도 늘어나 1∼2년 만에 「본전」을 뽑고도 남게 된다. 물론 수입 중 일부는 레슨학생을 할당해준 교수에게 상납된다.
돈으로 연결된 스승과 제자들은 스스로의 비리 때문에 자연히 폐쇄적 집단이 될 수밖에 없다. 음대 기악과 목관악기 전공을 예로 들면 전국을 통틀어 교수·강사가 50여 명에 불과하다. 이들 사이에는 엄격한 서열이 정해져 있어 순진한 신참강사가 일류대학에 제자를 지원시킬 경우 선배강사로부터 『당장 지원대학을 바꾸라』는 호된 질책을 받기까지 한다.
계보의 맨 아래에 있는 새끼선생들은 돈이 필요한 교수나 재단이 새로운 신진을 받아들이기 위해 다음 학기에 자신을 밀어내지 않도록 눈물겨운 자리지키기 작전을 펴야 한다. 지방 P대 미대 시간강사 박 모씨(33)는 『시간강사들끼리도 교수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대접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며 『대접받는 교수가 「돈을 쓸 수 있는 기회도 아무에게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배짱을 퉁기는 것도 그런 점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머리가 자란 새끼선생들이 때로는 떡값을 놓고 계보의 보스를 속이려다 혼쭐이 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 지방대 음대의 강사는 수험생의 학부모로부터 5천만원을 받아 4천만원만 교수에게 전달했다가 『당장 기관에 알리겠다』는 협박을 받고 다툰 끝에 결국 1천만원을 토해내야 했다.
돈줄,연줄을 타고 대학에 자리잡은 강사들은 그때부터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예술적 자질 연마보다는 많으면 20명씩이나 되는 레슨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시간을 보내고 막상 대학교직에 앉으면 어느덧 중견이 되고 학과장이라도 되면 금방 대가로 불려지는 실정에서 더 이상의 예술적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학생시절 국내 콩쿠르를 휩쓸다시피 하고 유학을 마친 뒤 모교 전임강사가 된 지 2년째인 이 모씨(32)는 학생들이 선배교수를 부정교수라고 점찍어 학내사태를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요즘 심각한 고민에 휩싸여 있다.
이씨는 『온힘을 기울여 음악을 했던 시절이 우습게 여겨진다』며 『교수생활 2년을 하고보니 내 기량은 학생들 수준으로 오히려 내려앉은 느낌』이라고 탄식했다.
예체능계 강사들은 전체 대학조직원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88년에 결성된 전국대학강사협의회에는 예체능분야 가입자가 매년 4∼5명 정도이다.
Y대 대학원생 모임인 원우회 회장 송 모씨(29)는 『예체능계 원생들은 1명도 가입돼 있지 않다』며 고급승용차나 굴리고 스키·골프를 즐기는 이들은 스스로가 다른 전공자들과 한 무리에 속하기를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존경이 아니라 돈으로 묶여진 스승과 제자들은 서로 상대의 비리를 캐고 헐뜯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학생들에게 비리가 알려져 서울의 H대,S대,K대 등에서는 지난해 극심한 학내분규를 겪기도 했다.<특별취재반>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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