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위 설치등 자정 노력” 김영삼 대표/“정략적 수사… 형평성 결여” 김대중 총재/지자제 공명선거·개혁입법 마무리 원론엔 일치「한다 못한다」 등의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김영삼 민자대표와 김영삼 평민총재의 국회대표연설은 정치권의 입지가 가뜩이나 좁아진 상황에서 진행되었다. 정치에 호재가 될 수 없는 걸프전쟁에 이어 정치권을 휘청거리게 만든 뇌물외유사건 때문이다.
정치가 30년 만의 지자제부활에 힘입어 모처럼 만에 복원력을 보이기 시작하려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 김씨는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 연설을 한 셈이다.
두 김씨의 대표연설은 이러한 분위기를 감안해 뇌물외유사건에 대한 대국민사과로부터 시작됐다.
김 대표는 『오랜 정치생활을 해온 사람으로서 또 집권당의 대표로서 깊은 자책감을 느낀다』고 말했고 김 총재는 『정치하는 괴로움과 송구함을 이번 같이 심각하게 느낀 때가 없었다』라고 사과했다.
두 김씨가 지난해 정기국회 대표연설에서 「경쟁과 협력」 관계가 부활되지 않나하는 확대해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공감대를 넓혔던 점을 고려하면 뇌물외유사건이 정치권 전체에 미친 파장이 더욱 더 분명해진다.
두 김씨는 뇌물외유사건으로 들끓고 있는 국민감정을 십분 의식해 재발방지를 다짐하고 이를 자정의 계기로 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사건을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뚜렷한 편차를 보였다.
김 대표는 『국민은 우리에게 새로운 정치문화 창출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국민으로부터 도덕적 불신을 받는 한 우리가 이룩하는 그 어떤 정치문화도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뇌물외유사건을 현상 그대로 받아들여 의원윤리강령제정과 국회윤리위설치를 통해 정치권의 도덕성 회복과 대국민신뢰회복의 계기로 삼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에 김 총재는 『우리의 잘못을 마음으로 사과하고 있으며 당소속 두 의원에 대해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전제하면서도 수사의 공정성과 형평성의 문제를 들어 반격을 취하는 모습이었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이번 사건에 정략적 목적이 숨어있다는 시각을 버리지 않은 채 성역없는 수사와 원칙있는 사후처리를 강조했다.
뇌물외유사건에 대한 언급으로 초점이 다소 흐려진 이번 연설에서 두 김씨는 코 앞에 다가온 지자제선거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두루 개진했다.
걸프전쟁 때문에 두 김씨의 연두기자회견이 연기된 점 등을 감안하면 이번 대표연설은 사실상 연두기자회견이나 마찬가지 성격이었다.
현안에 대한 의견개진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김 대표의 경우 구체적 내용보다 원론적 언급이 주조를 이루었다는 점이고 김 총재의 경우 집권공약을 방불케 하는 정치제도 개혁안이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두 김씨가 처해 있는 정치적 위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김 대표는 후계구도를 둘러싼 내부갈등 등 여권의 역학관계상 할 말을 자제해야 할 입장인 데 반해 김 총재는 야권부동의 대권주자로서 오히려 폭넓은 비전을 제시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개혁입법과 관련,국가보안법 적용에서 인권유린이 없도록 할 것과 안기부의 정치적 중립화를 약속했다. 김 대표는 이어 물가안정과 경제활력의 회복을 강조하는 한편 농어촌 발전을 위한 획기적 조치를 다짐했다.
입시부정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를 통한 재발방지를 역설했고 교육개혁법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에서 교육개혁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의하는 등 실무차원의 방안을 밝혔다. 김 총재는 부통령제와 결선투표제 도입의 개헌 및 4명의 부총리제 신설,그리고 비례대표에 의한 의원선거제도 개혁 및 내각구성의 개혁 등을 제시했다.
김 총재의 부통령제 개헌주장은 지난해 8월의 평민당 전당대회에서 공식 천명되었고 김 총재가 기회있을 때마다 되풀이 주장해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대표연설에서 다시 언급한 의미는 또 다르다. 김 총재는 14대 총선 이후 부통령제 개헌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를 14대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들고 나와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다시 개헌을 통해서라도 관철시키겠다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
두 김씨는 초점이 엇갈리는 대표연설 중에서도 지자제선거의 중요성과 공명선거의 절대필요성 및 개혁입법의 마무리 방침에 대해서는 견해를 같이했다.
김 대표는 이번 선거를 공명선거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고 김 총재는 부정선거가 있는 한 지자제성공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개혁입법의 경우 김 대표는 이를 지자제실시와 함께 가장 큰 개혁조치 중의 하나라고 적극적 의지를 보였고 김 총재는 개혁과 민주화를 위해 3당합당을 했다고 말한 구 민주·공화 등 구야권의 행동을 지켜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뇌물외유사건으로 개혁입법을 위해 소집된 이번 국회가 초반부터 질척거리고 있음을 감안하면 두 김씨의 개혁입법 마무리 다짐이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둘지는 미지수이다.
이번 연설에서도 두 김씨는 눈길을 끄는 새로운 사실을 얘기하거나 특별한 역점사항을 부각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김 대표는 오는 4월에 있을 평양 국제의회연맹(IPU)총회 참석형식으로 방북의사를 밝혔고 김 총재는 연설의 곳곳에서 지방색 타파의 필요성을 역설한 뒤 이를 위해 정치생명을 걸고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이병규 기자>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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