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기원전 1세기말 아우구스투스가 제정을 수립한 이후부터 2백년 동안 태평성대를 누렸다. 주변의 여러 민족을 포용하여 그들의 자치권을 허용하면서도 로마에 복종하게 함으로써 지중해 전역에 걸쳐 안정을 이룩했다. 그 안정기반 위에서 무역과 교통이 발달해 물질문명의 절정을 가져왔던 것이다. 로마의 주도하에 구가된 이 평화시대를 가리켜 「팍스 로마나」라고 부른다. 팍스란 라틴어로 평화란 뜻이다.「팍스 로마나」를 본떠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말이 나온 것은 제2차세계대전 직후였다. 미국 주도하의 세계평화가 올 것이라는 예상에서였다. 그러나 그 예상은 소련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으로 어긋나고 말았다. 그래서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말 대신 「팍스 러소아메리카나」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미소 양대 강국간의 세력균형으로 냉전 속의 안정기를 맞이했다는 뜻이다. 케네디흐루시초프가 설쳐대던 소위 KK시대가 대표적인 시절이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소련이 대내외적으로 약화되면서 「팍스 러소아메리카나」라는 양극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특히 이번의 걸프전쟁을 계기로 소련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국의 지위가 월등하게 높아지고 있음에 세계는 새삼 놀라고 있다. 그래서 걸프전이 끝나고 나면 「팍스 아메리카나」가 도래할 것이라는 유력한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다. 만일 다국적군의 승리로 이 전쟁이 끝나면 석유는 미국이 장악하게 되고 소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던 아랍권이 미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럴 경우 세계는 미소 양극체제에서 미국 단일체제의 새로운 질서로 개편될 것이다. 조지·부시 미국 대통령은 29일 의회에 보고한 연두교서에서 새 질서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쟁은 일정대로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 전쟁과 관련,미국은 국제적으로 대단히 강력한 입장에 있다』고 강조하고 『세계는 지금 신질서 구축을 위한 결정적인 시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조수아·무라브치크라는 미 엔터프라이즈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뉴욕타임스지에 기고한 글에서 『팍스 아메리카나는 지배가 아닌 설득에 바탕을 두게 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팍스 아메리카나는 제국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청바지와 록음악 맥도널드 햄버거뿐 아니라 미국식의 국가통치방식과 정부의 행동방식으로 세계의 상당한 부분을 석권함으로써 이뤄지게 된다』고 전망하고 있다.
「팍스 아메리카나」시대의 예고와 전망이 그럴 듯한지 걸프전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오던 나라들이 최근에 들어 갑자기 적극지원으로 자세를 바꾸고 있다.
계산 빠르다는 일본이 90억달러를 추가지원하겠다고 나서고 독일도 55억달러 추가제공을 약속했는데 그 틈바구니에서 소련은 중재안을 낸다며 목소리를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도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모르나 2억8천만달러의 추가지원을 30일 서둘러 발표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