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인물 선출 정치쇄신 계기로”/각 사회단체서 신인선발 지원/유권자 스스로 감시활동 펴야/공명선거 정부의지·사법부의 엄정한 처리 필요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 중에서 정치가 가장 후진성을 띠고 있고 또 국민들이 가장 싫어하고 지탄하는 직업이 정치인이라는 것은 중학생들까지도 공감하고 있다. 정치현실이 이처럼 실망스러운 시점에서 새로운 정치로의 전환을 위한 큰 혁신이 있어야 한다는 바람과 주장이 고조되고 있고 또 이를 향한 국민적 운동이 일기 시작한 것은 지극히 다행한 현상이다. 3월에 실시될 것으로 예정되어 있는 기초 및 광역지방의회선거와 내년에 실시될 국회의원선거 그리고 대통령선거들은 우리 정치가 현재의 후진성을 탈피하고 새로운 정치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30년 만에 다시 되찾게 된 지방자치를 위한 선거가 이제까지 실시되어왔던 선거에서 나타났던 폐해를 되풀이하게 된다면 아직까지는 중앙정치 차원에서만 행해지던 파행적 정치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대·만연되어 우리 정치를 회복 불능의 상태로 떨어뜨릴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번 지자제선거에서 선거혁명을 일으켜 우리 정치를 쇄신해나갈 인물들을 선출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동시적으로 추진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첫째는 지자제선거에 입후보하는 사람들 중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다수를 차지하여야 한다.
이번 선거에 출마를 희망하고 있는 인물들의 대부분은 기존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정치인들이거나 또는 정치의 주변에서 직접 간접으로 관계해 오면서 우리 정치의 파행에 일익을 담당했던 사람들이다. 이러한 인물들은 정치적 속성이나 행태 그리고 가치관 등에서 우리 정치를 저절로 몰아온 기성 정치인들과 별로 다른 점이 없으며 이들이 선거에서 당선된다면 구정치의 폐해를 그대로 모방하고 답습하여 나갈 사람들인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하여 유권자가 뽑고 키워나가야 할 새로운 인물이란 지금까지 정치의 언저리에서 얼쩡거렸으면서도 유권자들에게는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던 사람들이 아니라 사회의 각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활동을 통하여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하여 온 사람들을 의미한다.
만일 부동산 가격의 폭등이나 투기 등으로 하루아침에 떼돈을 만지게 된 졸부들이나 민주주의 원리가 무엇인가에 관한 강의 한 번 들어 본 적이 없거나 책 한 권 읽어 본 적이 없이 정치권에 빌붙어 권모술수나 익혀왔던 사람,또는 극한적 투쟁만을 민주정치의 모든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살아온 정치꾼들만이 출마하는 속에서 유권자들이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면 이번 선거는 우리 정치의 수준을 끌어올리기보다는 더욱 퇴화시키는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이번 선거는 부적격 정치인들을 물갈이하고 현 정치의 쇄신에 앞장설 새 인물을 뽑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적 당위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가 안고 있는 고민은 정치의 일선에 나아가서 활동할 것이 요청되는 인물들은 정치의 투신을 기피한다는 점이다. 정치에의 참여를 기피하는 이유에는 기존 정치판을 경멸하고 불신하기 때문인 점도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는 기존 정치를 쇄신시키는 데 역부족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건하에서는 각 사회단체와 조직들이 정치위원회를 구성하고 자체 조직내에서 새로운 인물을 선발하여 선거에 출마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사회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단체들의 조직적 지원속에 당선된 인물들은 배후의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정치쇄신을 주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노총을 비롯한 여러 이익집단들이나 사회단체들이 지자제선거에 후보를 낼 계획을 가지고 있고 또 이들의 선거운동을 조직적으로 지원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은 새로운 정치로의 전환과정에서 지극히 바람직하고도 필요한 현상으로서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지자제선거에서 선거혁명이 이루어지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에 혁명적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친 선거이변을 통해 정치인들에게 경종을 울려왔다. 또한 1987년의 민주화운동과정에서 보였던 국민들의 행태는 국민들이 민주정치를 제대로 할 정도로 높은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낳게도 했다.
그러나 민중혁명적 분위기 속에서 실시된 선거에서 5공화국의 집권당이었던 민정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점이라든가 또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 절대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지역감정에 근거한 지역주의 성향이었다는 점 등은 과연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이 민주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흔히 하는 이야기이지만 저질정치를 자행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뽑아서 국회에 보낸 것은 바로 우리 유권자들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각성은 선거혁명을 이룩하는 데 있어 필연적 요건인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실시되었던 선거들에서 나타난 특징을 보면 1960년대 초까지는 정부·여당에 의한 적나라한 부정선거이던 것이 1970년대에는 관권선거와 행정선거라는 간접적 영향으로 개선되었다. 1980년대에도 이러한 성향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보다 큰 문젯거리로 등장한 것은 여·야당을 불문하고 후보자들에 의해 자행된 불법·타락·금권선거였다. 1990년대의 선거는 후보자와 정당들에 의해 자행되는 불법·금권선거를 묵인하고 방조하던 데에 종지부를 찍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유권자 의식의 개혁은 유권자들의 양식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효과를 볼 수가 없으며 지식인·학생·민간사회단체들이 타락·불법선거방지기구를 조직화하고 계몽과 감시 및 고발활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여야 한다.
지자제선거가 새로운 정치를 확립하기 위한 시발점이 되기 위해 추진되고 실행되어야 할 세 번째 조건은 공명선거 실시를 위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이다. 이미 대통령을 비롯하여 선거 관련부처 장관들은 기자회견을 통하여 불법·타락선거를 엄격히 규제할 것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의지표명은 과거의 모든 선거에서도 있어왔던 관례였다. 그러면서도 선거가 끝나고 나면 수없이 많은 불법과 부정이 선거과정에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처벌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특히 당선자가 불법선거운동 때문에 당선자 자격을 박탈당한 것은 40년 동안에 단 몇 차례에 불과하였다.
특히 이번 지자제선거가 2년 전에 연기시켰던 제6공화국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띨 것으고 또한 3당통합의 적실성에 대한 국민투표적 성격도 없지 않기 때문에 과연 정부가 여권 후보자들의 낙선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법적 선거운동을 엄정하게 규제할 것인가에 대하여 회의를 갖게 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선거가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의 선거가 공명선거가 되느냐 안 되느냐의 관건은 권력을 잡고 있는 여당과 이를 지원하는 행정부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만일 대통령을 위시한 선거관련 행정부처들이 공명선거 실시에 대한 진정한 의지와 사명감을 가지고 불법을 자행한 후보자나 선거운동원들을 여야를 불문하고 엄격하게 척결한다면 국민적 인기를 확보하여 다음의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에서도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이번 선거를 6공화국 정권에 대한 평가로 확대,해석하면서 선거에서의 승리확보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또 여권 후보자들의 불법선거운동을 편파적으로 묵인하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내년에 있을 두 차례 선거에서의 패배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선거의 엄격한 관리에서 행정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법부의 역할이다. 경찰이나 검찰 혹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엄정한 중립적 입장에서 선거법 위반자들을 고발한다 할지라도 이 고발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거나 과거와 같이 당선자들에 대한 선거소송을 정치적 이유 때문에 지연시키게 된다면 후보자들로 하여금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당선만 되면 기정사실화된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 것이다. 선거과정에서 자행되어왔던 불법행위와 타락행위를 근절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법에 규정된 것을 어기고 당선된 후보자는 필연적으로 당선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는 전통을 세우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에의 기대를 갖게 만들 이번 선거에서의 혁명은 유권자들의 각성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국민들의 정치의식의 혁신적 전환과 더불어 엄격한 선거관리에 대한 행정부의 확고한 의지,그리고 불법·탈법선거운동에 대한 사법부의 신속하고도 엄정한 처리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질 때 우리가 바라는 선거혁명이 가능할 것 같다.
◇신명순<연세대 교수>연세대>
▲필자약력
1947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정치학 박사 미국 브레들리대학교 조교수(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비교정치·한국정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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