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예체능 입시비리/이대로 둘수없다:6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예체능 입시비리/이대로 둘수없다:6

입력
1991.01.29 00:00
0 0

◎입학 후도 갖가지 명목 금품강요/교수레슨 안 받으면 “낙제”/거액콩쿠르·작품비까지/돈 마련 위해 학생들은 불법과외 악순환예체능계 대학에서의 비리는 입시 전에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학생들은 갖가지 명분을 내세운 비리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예술보다는 추악한 우리 예술계의 현실을 배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거액의 돈을 들여 대학에 들어간 실력없는 학생들일수록 「산 넘어 산」 격의 금품요구에 시달리게 되며 그 돈을 대기 위해 불법과외를 하는 비리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입학 후의 비리는 체능계보다 예능계에서 특히 심하다.

대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는 금품강요는 교수들에 대한 정기적 사례비 접대비 레슨비 지도비 작품비 콩쿠르비 참가비 등 명목도 가지가지이다. 전국규모의 콩쿠르비를 내야 하고 유명교수의 작품활동에 한몫 끼려면 참가비를 내지 않으면 안 다.

학생들은 금품요구를 거절하거나 교수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유형무형의 차별을 받게 돼 학점을 따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장래가 보장되지 않는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고 말한다.

87년에 서울 J대 예술대에서는 무용과 학생들이 모 교수의 배척시위를 벌인 일이 있다.

이유는 자신의 별도 지도를 받지 않은 학생들에게 교수가 F학점 등 형편없는 점수를 주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내에 무용학원을 차려 운영하는 그 교수는 학점차별을 부인하고 나섰는데 F학점을 받은 학생들이 모두 구제된 이후 이 문제는 흐지부지 처리됐다. 더 이상 까발려 봐야 교수 학생 모두에게 좋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레슨비는 교수의 명성에 따라 1회 20만원에서부터 2백만원까지 다양하다. 특히 그 분야에서 강력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유명 교수들은 부르는 것이 값이라고 한다.

학생들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교수들에게 레슨을 받음으로써 그의 사람이 되기 위해 거액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바치고 있다. 일단 눈에 들어야만 졸업 후 예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이 중류층이라는 E대 음대 이 모양(21)은 『졸업할 때까지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양은 『무리르 해서 입학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가정형편상 지도교수의 레슨을 받기엔 벅차다』며 『네 군데 이르바이트를 하며 간신히 쫓아 가고는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돈이 들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S여대 음대의 박 모양도 집이 어려운 사정을 친구들에게 숨기고 아르바이트로 피아노와 작곡을 지도해 레슨비를 벌고 있는데 『명성을 얻으려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체념하고 있다.

음악이나 미술과 달리 바닥이 좁은 무용에서는 작품비가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다.

작품비란 교수가 학생의 안무와 구성을 지도하고 받는 것으로 1편에 1백만∼1천만원을 내야 한다. 특히 학생이 단독으로 무용발표회를 가질 경우엔 작품비 외에 의상료 조명료 티켓배당료 스태프경비 등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며 공연 후에는 응분의 사례를 또 해야하는 실정이다.

참가비는 유명 교수의 연주회나 무용발표회 전시회 등에 학생이 참여할 때 드는 돈. 유명 무용단에서 활약중인 김 모양(27)은 86년 당시 3백만원을 참가비로 내고 지도교수의 무용발표회에 참가했다. 김 양은 『당시 부수경비 등 꽤 많은 돈이 들었지만 오늘날 이 정도로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비리의 하나인 콩쿠르비는 전국규모의 음악·무용콩쿠르에서 참가자가 심사위원 7∼8명에게 사전에 평균 1백만원씩 돈을 바쳐 입상을 보장받는 것이다.

남자는 전국규모의 콩쿠르에서 1등을 할 경우 병역을 면제받는 특혜가 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로비가 더욱 치열하다.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를 엄선,「입상보장금」을 받지만 간혹 중복되는 바람에 말썽이 생기기도 한다.

대학생들은 서민들이 생각하기도 어려운 돈을 주는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자성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구조적 문제이며 학생들이 맞서는 것은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말하고 있다.

상식을 휠씬 넘는 금액의 레슨비 작품비 지도비 등이 오가는 것은 교육자나 예술가로서의 양심을 버린 일부 교수들과 물질로 개인적인 성공을 꾀하는 학생들의 합작품인 셈이다.

모 유명대학의 교수는 『선생의 재능과 능력에 상응한 지도비를 받는 것이 과연 잘못된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학부모들이 극성스럽게 돈 보따리를 들고 쫓아 다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책임을 돌렸다.

실제로 재력있는 학부모들은 유명 교수의 집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극성을 떨고 있다. 유명 교수가 배출한 제자들이 모교는 물론 각 대학의 교수로 활약하는 경우에는 알아서 각종 금품을 상납하고 있다. 무용계를 좌지우지하는 파워를 갖고 있다는 모 대학 교수가 최근 문화부를 통해 접수된 외국의 공연초청에 영향력을 발휘해 자신의 사설무용단을 파견한 사실이 알려져 권위가 더욱 치솟자 그 교수와 선을 대려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사회에서의 비리와 부조리는 재능이 있으면서도 돈이 없는 학생들을 도태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런 학생들은 「관례」에 적응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다 갈등과 회의 속에서 방황하다 끝내 중도 포기하게 된다.

D대 음대 신 모양은 『재능 면에서 탁월했던 친구들이 경제적 사정 때문에 주저앉고 마는 것이 안타깝다』며 『예술적 재능만으로 인정받는 풍토가 절실하다』고 말했다.<특별취재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