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을 들춰봐도 온전한 구석이란 없다. 뇌물외유 의원 3명을 큰 마음먹고 한번 족치려다 보니 웬걸 20여 명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 특계자금이라도 캐려고 보니 청와대·안기부는 아니라해도 부총리나 장관이름마저 튀어나올 형국이니 질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예·체능계 대입부정만 해도 그렇다. 자신도 부정에 가담했던 교직자가 제딸 불합격에 격분,고자질하는 통에 용케 꼬투리는 잡았으나 그 꼬투리를 뽑으려다 보니 이건 마치 고구마덩굴이다. 어느 대학이라도 남아 날 것 같지 않으니 도로 덮을 수도 없어 진퇴양난이다.
당장 급한 불이라도 끄고 볼 요량으로 의원 3명이라도 일단 구속하려고는 했었다. 하지만 회기중에 그랬다가는 개혁입법 등 산적한 관제처리는 물론이고 정치실종마저 자초하게 된다니 또 엉거주춤하는 꼴불견이 여전히 빚어진다.
어디고 손만 댔다하면 모두 이 지경이다. 가히 천하대란이요,우리 사회의 지축이 흔들리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이 판에 누구인들 정신을 잃고 우왕좌왕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혹시 백약이 무효인 사태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도 싶다.
의학이나 약리학에서는 내성이라는 게 있다. 진단과 처방으로 약을 써도 병균이 약물에 대한 저항현상을 보여 약효가 먹혀들지 않는 걸 내성이라 일컫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도 어느새 약효가 제대로 안 먹히는 「내성사회」로 굳어 버렸다고 할 만하다. 이번의 뇌물외유나 예·체능 대입부정소동이야말로 내성사회라는 중환자가 마구 질러대는 처절한 고통의 비명소리로 들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 비명소리에 누구나가 지금처럼 탄식만 하고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병균의 뇌성과 끝 없는 싸움을 벌이며 오늘의 의·약학이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왔듯 우리도 하루빨리 이성을 되찾아 철두철미 끈질긴 대처를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같은 대처를 위해서는 내성의 원리를 파악하고,그에 따른 진단과 처방을 정확히 하고,약효가 먹히면서 부작용이 적은 올바른 투약을 두루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성의 원리란 별게 아니다. 어떤 약에 대해서도 병균은 살아 남으려 발버둥치게 마련인 것이어서 시간이 흐르면서 대항수단을 갖춘 돌연변이를 만들어 내고,그것만이 증식해 내성을 갖춰 나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섣불리 약을 쓰다간 병을 고치긴커녕 내성만 촉진시키게 된다. 「약주고 병주기」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도 무한한 잠재력과 대항수단이 있는 것이어서 정신만 차리면 극복이 가능하다. 충분한 양의 약을 반복투여하고,동시에 다른 약제를 병용하는 등의 다단계 전략으로 병균을 혼란시키고 내성을 갖출 틈을 도대체 주지 않는 방법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내성의 원리를 일단 알고 보면 왜 우리 사회가 내성사회가 되어 왔는지,그리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자명해진다.
먼저 뇌물외유나 예·체능 부정소동에서 「약주고 병주기」식의 단편처방은 절대 안 된다. 20여 명의 다른 의원이나 함께 돈을 나눠 쓴 행정부 쪽은 제쳐놓고 3명만 떼어내어 족쳐봤자 부정의 방지 내지 확산이라는 내성만 더욱 키워주게 된다. 이 사회를 오늘처럼 만들어 놓고도 모자라 또 그 짓을 할 수는 없다. 걸핏하면 「형평」을 내세우는 당국이니 전부 구속할 순 없다 해도 해결책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모두를 철저히 조사해야 마땅하다.
단편처리와 마찬가지로 1회성 단죄도 물론 안 된다. 재수없어 한 번 걸려들었다는 생각의 확산이 바로 내성을 키워주는 것이기 때문에 명의처럼 지속·반복적으로 찾아내 박멸해나가야 한다.
병의 근원이나 곪집은 놔둔 채 엉뚱한 곳이나 어루만져서도 큰일난다. 이번 경우 특계자금이나 어설픈 입시행태는 온전히 버려둔 채 사람만 쫓아봤자 「백년하청」이다. 반복과 병용의 약물 투여와 함께 병소를 과감히 도려내는 외과 수술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끝으로 과연 누가 이 같은 일을 해낼 것인가라는 「명의」의 문제가 또 남는다. 온전한 의사가 되려면 6년 수학에 험난한 인턴·레지던트 과정과 전문의 시험도 모자라 평생공부와 남다른 봉사정신마저 요구된다. 줄만 잘 잡고,돈만 잘 쓰고,힘만 있으면 하루아침에 정치인이 되어 저마다 사회의 「명의」라고 감히 자처하고 있으니 나라나 사회가 이 꼴인 것이다. 대학시절의 어느 스승은 이들 「돌파리」들을 가리켜 「빈뇌직업정치인」이라고 규정하고 이들이 나라를 망친다고 탄식했다. 골이 비어 있는 그런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분기탱천해 나서본 들 그 처방도 번지수가 어긋나기 일쑤이니 그것마저 두려워지는 오늘인 것이다.
어느 세월에 그들을 불러모아 하나하나 가르치고 호된 수련을 시킬 것인가. 결국 「명의」에 걸맞을 윤리와 고된 수련과정과 실력을 두루 갖춘 사람을 골라내는 일이 새삼 중요해진다.
환자가 의사를 철저히 믿으면 능히 약을 쓰지 않고도 병을 고친다고 한다. 실제로 무해무익한 위약만으로 심리적 정신적 요법을 펴 플레시보 효과라는 기적도 일으키는 것이다.
지금 도처에서 내성사회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린다. 하루빨리 「명의」를 찾아내고,지속·반복적이고 병용적인 과감한 종합대처로 그 비명소리를 잠재워야 하지 않겠는가.<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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