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의 「뇌물외유」사건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자동차공업협회로부터 여행경비를 받은 여야 세 의원이 구속되는 것이 불가피한 것 같고,무역협회에서 같은 방법으로 돈을 받은 의원 20여 명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하라는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 주변에선 「이럴 바에야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는 편이 낫겠다」는 자포자기성 반발까지 일고 있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 모든 사태가 스스로 자초한 일임을 생각할 때 이제와서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 것인가.지난 1개월 사이의 한국일보 사설 제목만 몇 개 훑어봐도 저간의 사정이 분명히 드러난다. 구랍 24일자엔 「미운 짓만 골라 하는 국회」라는 제목이 있다. 정기국회 회기 1백일 중 70일을 허송하면서 직무를 유기하더니,뒤늦게 시간에 쫓기게 되자 예산안을 졸속처리하고 각종 법안들을 변칙통과시켰다. 이어 국회는 사회에 줄 악영향은 고려하지도 않고 세비를 23%나 기습인상한 뒤 삼삼오오 집단외유길로 나섰다. 사설은 그 시점에서 국민의 빈축이 분노로 바뀌고 있음을 지적해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뒤 정치권이 세비를 반납하고 외유를 자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사태는 그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1월15일 사설제목은 「외유의원 명단 좀 알자」였다. 자숙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대부분이 눈을 피해 몰래 빠져나갔음을 뒤늦게 확인하고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그 며칠 뒤 걸프전쟁을 전후해 국회의원들이 허겁지겁 귀국하면서 뇌물외유사건이 터진 것이다. 누가 봐도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된 것은 모두 국회의원들의 둔감한 정치감각과 무분별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고 하겠다.
「뇌물외유」가 폭발적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게 된 것은 물론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의 한꺼번에 터진 것이긴 하지만 정치불신으로 이어진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아니,그 동안 누적된 정치에 대한 불신이 이 사건을 계기로 터졌다고 볼 수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상정돼 여여오 여야가 격돌하게 될 때 정권차원의 위기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고 하는데,분명히 정치권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어느 쪽으로 사건처리가 구르든 현정치세력에게는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은 지금 현정치세력에게서 더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려가고 있는중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민자당 출범 이후 권력게임 외에 한 일이 없고,야당도 지나치게 대권구도에 집착해 민생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야의 지지도가 10% 안팎이라는 것이 여론의 정확한 향배를 알려주고 있다.
이번 「뇌물외유」사건 말고도 국민의 눈에 상당수의 선량은 이미 그 자질·자세·성실도·의정에 관한 공부에서 낙제감으로 비치고 있다. 모르긴 하지만 다음 총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층은 1·21총선 때처럼 「물갈이 대세」라는 거센 도전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정부도 어차피 진퇴양난의 입장이라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확률이 높은 강경수사 쪽으로 기울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가 있을 듯하다.
그러나 정치권은 물론 정부가 알아야 하는 것은 뇌물외유에 대한 여론의 압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다음번에는 아마도 크고 작은 정치자금 문제,정치지도자의 도덕성 등 문제로 비화할 공산이 크다. 고삐가 풀리기 시작한 이 심상치 않은 여론의 대세에서 살아 남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결단해야 하는 것인가. 대답은 간단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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