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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은 마치 “유령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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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은 마치 “유령의 도시”

입력
1991.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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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순례객 발길 끊기고 상가들도 철시/거리엔 팔인 봉기구호·무장 이스라엘군만【베들레헴(이스라엘)=이상석 특파원】 전세계 기독교인들의 마음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순례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걸프전쟁으로 「사막의 폭풍」이 몰아친 탓이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11㎞지점의 언덕에 자리잡은 인구 2만의 소도시. 시가지 곳곳에는 이라크의 미사일 공격을 계기로 가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팔레스타인들의 봉기(인티파다)를 저지하기 위해 배치된 이스라엘 군인들의 모습만이 눈에 띌 뿐 인적이 거의 끊긴 상태이다.

예루살렘을 떠난 택시가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편도 1차선의 낡고 가파른 아스팔트 길을 기어오르는 순간 이스라엘인 운전사는 운전석 밑에 손을 집어 넣더니 소형 권총을 꺼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요즘 이곳에 올 때는 반드시 이 권총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이 운전사에 따르면 베들레헴 주민들의 대다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인데 과격 회교단체에 가담하고 있는 일부 청년들이 이스라엘 운전사나 관광객에 대한 테러를 일삼는다고 한다.

평소 순례객들을 실은 관광버스로 장사진을 이루던 「말구유광장」 부근에는 휴교조치로 집에서 쉬고 있는 팔레스타인 소년들이 하나 둘씩 무리를 지어 서 있다가 기자일행을 태운 택시가 멈춰서자 『한 푼만 보태줘요』하면서 달라 붙는다.

말구유광장을 중심으로 늘어선 식당 카페 기념품 가게 등도 대부분 문이 닫힌 채 길가엔 휴지조각과 빈 깡통들만이 찬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들 가게들은 걸프사태 때문에 연중 최대 대목이랄 수 있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에도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광장으로부터 남동 쪽으로 5분 남짓 걸으면 「우유동굴거리」가 나온다. 「우유동굴」은 성모마리아가 모유를 한방울 떨어뜨렸다는 곳으로 이곳에 이르는 꾸불꾸불한 골목길 담벼락에는 구예루살렘의 뒷골목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구호가 페인트로 그려져 있다.

이 골목에서 기념품상을 경영하는 카나바티씨(51)는 『지난해 10월 예루살렘의 템플마운트에서 벌어진 이스라엘 경찰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사건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적개심이 날로 더해가고 있다』고 전했다.

카나바티씨는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팔레스타인 청년들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주도하는 인티파다에 기대를 걸어왔으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이스라엘인들의 씨를 말리자」는 팔레스타인 회교 과격단체들의 「하마스」(광신)운동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마스」운동을 이끄는 팔레스타인 급진파들을 「요르단강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지역에 회교국가를 건설하자」는 구호 아래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검의 전쟁」을 선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에서는 지난해 10∼12월 사이 1주일에 한 명꼴로 이스라엘인들이 칼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스라엘당국은 이 같은 팔레스타인 강경파의 득세에 맞서 휴교조치나 과격시위자에 대한 발포 등 강경진압을 펴오다 이번 걸프전쟁이 발발하면서 「하마스」운동의 본거지인 요르단강 서안을 비롯한 점령지구에 24시간 통금을 실시하고 있다.

방독면을 차고 말구유광장을 순찰중인 이스라엘 군인들의 곁을 지나 성탄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썰렁한 교회당을 혼자 지키고 있던 팔레스타인계 목사가 대뜸 『한국인이냐』며 반겼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이 목사는 『사랑과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출생지인 베들레헴에서마저도 전쟁통에 유령의 도시로 변하는 걸 보니 안타깝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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