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공격 「스커드」 영공침해 “모르는 체”/후세인 지지 국내여론으로 미 압력 안 통해【암만(요르단)=이상석 특파원】 미국이 이번 걸프전쟁에서 점차 이라크 쪽으로 기울이고 있는 요르단에 대해 외교적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해 8월 걸프사태 발발 이래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서 줄타기외교를 벌여오던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이 최근 국내여론에 못 이겨 이라크 쪽으로 돌아서는 조짐을 보이자 미국이 옷자락을 붙잡고 나선 것이다.
미국정부는 지난 20일 리처드·아미티지 전 국무부 차관을 부시 대통령의 특사로 암만에 보내 요르단의 친이라크정책에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
아미티지 특사의 암만방문은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걸프전에 관한 요르단의 입장을 밝히는 내외신 기자회견을 한지 하루만에 이뤄진 것이었다.
후세인 국왕은 19일 회견에서 이라크가 요르단 상공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데 대한 논평을 요구받고 『이것이 요르단 영공의 침범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느긋한 태도를 보였었다. 후세인왕은 또 자신의 「형제국」인 이라크에 대해 미국이 2차대전 중 히로시마(광도)에 투하한 원자탄을 능가하는 양의 폭탄을 퍼붓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같은 소식을 전해 들은 부시 대통령은 즉시 다음날 중동문제 전문가인 아미티지를 후세인 국왕에게 보내 후세인 왕의 진의를 파악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거의 매일 밤 자국의 영토위를 외국(이라크)의 미사일이 휙휙 날아다니고 있는데도 「난 몰라라」하는 건 좀 심하지 않느냐』는 게 미국정부의 항변이다.
부시 행정부내의 한 관리도 『이라크와 이스라엘간의 분쟁에 휘말리는 걸 그렇게 염려하는 요르단이라면 이라크의 미사일 공격에 대해 최소한 항의성명 하나라도 냈어야 했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이는 후세인 국왕이 처한 난처한 입장을 너무나도 모르고 하는 소리다.
3백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인 요르단에서는 걸프전이 발발한 직후부터 사담·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지지하는 열기에 휩싸여 있다. 「사담」은 요즘 요르단에서는 둘도 없는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정계 재계 종교계 지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거리의 대다수 사람들도 거의 매일같이 「사담」을 연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생아를 낳으면 「사담」이라고 이름 짓는 요르단인들이 늘어가고 있다. 심지어 암만 주재 미국대사관 앞에 있는 간이음식점 「엉클 샘」 주인은 가게이름을 「엉클 사담」으로 바꿀 채비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담을 비난하는 말을 하다가는 총맞기 십상인 게 요즘 요르단의 공기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후세인 국왕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영웅의 편에 서는 길」밖에는 없다.
그가 19일의 기자회견 석상에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규탄하지도 용인하지도 않는다』는 말로 얼버무리면서도 미국에 대한 지하드(회교성전)를 촉구한 요르단 의회의 결의를 「민주주의적 결정」이라고 감싸고 돈 까닭이 바로 이같은 배경에서이다.
따라서 요르단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후세인왕이 이라크에 대해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자제해 달라는 등의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는 매우 힘든 실정이다.
암만정부는 오히려 아미티지의 암만방문에 대해 아무런 공식 논평도 내놓지 않음으로써 미국에 대한 불만을 은근히 표출했다. 걸프전이 장기화되고 요르단 상공에 이스라엘로 향하는 이라크의 미사일 행렬이 늘어갈수록 요르단과 미국간에 파인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갈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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