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보호차원의 대아랍 입장 필요개전 1주째를 맞은 걸프전쟁은 서방측의 수많은 승전보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낙관만 하기엔 어두운 구석이 엿보이는 듯하다.
이라크의 이스라엘 공격이나 이웃 아랍인에 대한 후세인의 성전참가 촉구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확전의 뚜렷한 징후는 없다. 평소의 성향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자제가 지속되고 있고 다국적군에 가담한 아랍군의 이탈도 지금으로서는 그리 쉽게 예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애초부터 사담·후세인의 장기전,확전전략과 미국의 속전속결전략의 대결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쌍방의 작전 전개과정을 좀더 주의깊게 관찰해봄 직하다.
지금으로서는 후세인의 속마음을 헤아릴 길 없으나,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침공할 때부터 이미 장기전을 계획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쿠웨이트를 일단 합병하고 이를 기정사실화하려는 태도를 보이면서 부시의 속전속결식 주장인 「완전하고 무조건적 철수」에 맞서 오랜 숙원인 팔레스타인문제를 연계시킨 협상을 제의하고 나섰던 것이다. 팔레스타인문제가 하루 이틀에 해결될 수 없는 난제 중의 난제임은 중동을 아는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여기서부터 이미 장기화하려는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도 사담·후세인의 허세에 신뢰감을 갖지는 않았겠지만,일시에 궤멸될 수밖에 없는 허약한 군사력으로 부시의 강경한 철수요구를 그렇게도 완강히 거부하고 무모한 전쟁을 선택한 데에 의문을 갖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부시의 강공에 밀려 비록 협상의 길을 버렸지만 거의 반 년에 가까운 시간을,바로 코앞에서 무력시위를 해온 미군을 보고 속수무책으로 버티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즉 성패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나름대로의 전략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화력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있음을 인식한 이라크의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장기전과 확전일 수밖에 없다. 장기전을 통하여 이슬람과 아랍민족주의에 호소하여 이라크 대 미국전이 아닌 아랍 대 서방전으로 확전을 유도하자는 심산이었던 것 같다.
부시가 「회복하고 지켜야겠다」는 국제질서는 「쿠웨이트의 완전한 해방」과 「사바왕가의 복귀」이다. 이라크군이 스스로 철수하지 않는 한 현재 쿠웨이트를 점거하고 있는 이라크군이 축출이 선결문제이며,지상군의 투입과 함께 다수의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시가전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이는 바로 미국의 속전속결전략을 방해할 수 있는 이라크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미군의 비호로 복귀될 사바왕가의 유지도 낙관할 수만은 없다. 이미 왕정에 대한 불만세력도 상당한 정도로 증가된 상황이어서 체제유지도 문제로 제기된다. 자국민만으로는 노동력마저 부족한 초소국 쿠웨이트의 검은 황금의 개발도 실은 전체인구 1백70만의 절반을 차지하는 외국 노동자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도 간과될 수 없다. 결국 「해방된 쿠웨이트」는 또다시 군대의 주둔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미국의 목표가 이라크의 점령이 아니고 「쿠웨이트의 해방」인 한 이라크는 쿠웨이트에 대한 영원한 위협세력이며 쿠웨이트 주둔군과 이라크군 사이에 적지 않은 충돌이 예상됨은 불을 보는 듯한 일이다.
이쯤 되면 미국의 속전속결은 만만치 않게 마련이다. 이라크는 1920년 영국의 위임통치가 결정되었을 때 제2의 아랍봉기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피해를 영국에 안겨주는 저항운동을 치른 역사적인 경험을 가진 나라이다. 그 결과 영국의 대아랍통치에서 간접통치로 대체시키는 일대 정책전환을 가져오게까지 하였다. 이러한 역사는 적어도 이라크인들에게는 단순한 지난날의 이야기로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기억 속에 생생히 재생되고 있는 기미독립운동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중동지역 특히 대아랍 외교에서 지나친 친서방일변도 정책과 북한의 역공세로 적지 않은 곤욕과 물적 낭비를 경험했었다. 수많은 우리의 인력진출을 포함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쌓아온 경제협력에 힘입어 이제 상호 신뢰와 호혜적 원칙 위에 중요한 우방의 지위를 확보한 셈이다.
50년대의 친서방외교,60년대의 다변화외교,70년대의 제3세계외교,80년대의 전방위외교의 과정을 거쳐 이제 북방외교에 이르기까지 개가를 올리고 있는 현시점에서,서방의 분할지배통치의 유산으로 1민족 21개국으로 분열되어 복잡하게 교차하고 충돌하는 이해와 이로 인한 갈등과 마찰이 끊이지 않는 아랍제국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입장은 우리의 국익보호적 차원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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