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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전화위복」을/정경희(아침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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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전화위복」을/정경희(아침조망)

입력
1991.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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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의 악몽데이비드·해크워드 대령이 미 육군에 입대한 것은 2차대전 후 열다섯 살 때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고아로 자란 그는 20세 때 한국전쟁에 참가했다. 베트남전쟁 때 그는 전 미국군 장교 중 가장 젊은 대령이 됐다. 그는 살아있는 미군 중 훈장을 가장 많이 단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싸움터를 떠나기 싫어 승진을 거부하고 퇴역했다.

재작년 그는 회고록에서 세계최대·최강의 미국의 군사조직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미국의 군지도자들은 전쟁에 이기는 것보다는 점수를 따 승진하는 데에 더 정신이 팔려 있다고 그는 말했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진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장교는 「미래 기업형의 재주꾼」이 아니라,「전투지도자」로 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미국은 베트남에서 2차대전의 재판이 아닌 게릴라전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더라면,그 전쟁에 이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라크와의 「쿠웨이트전쟁」은 어떻게 될까?

미국의 환상적인 첨단장비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화력에도 불구하고,어쩌면 장기적인 소모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의구의 소리가 차츰 커가고 있다. 이라크의 전투기들은 아직도 대부분 살아 있는 것 같고,스커드미사일이 불쑥불쑥 날아오는 것으로 봐 미국의 융단폭격도 믿을 게 못 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초반 융탄폭격의 과대평가는 미 국방부의 「미래기업형의 재주꾼」들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것과 비슷한 오산을 되풀이하는 듯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땅 속에 꽁꽁 숨은 두더지를 상대로 하는 오산이다.

○“후세인은 방어에 강해”

원래 이라크는 공격력이 약하고,방어에 강하다고 워싱턴에 있는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의 에드워드·러트워크는 말한다. 후세인의 방어력은 「공병대」에 있다고 한다.

이라크는 과거 히틀러가 폴란드로 밀고 들어갈 때보다 더 많은 5천5백대의 탱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쿠데타를 걱정해야 했던 후세인은 유능한 장교보다는 멍텅구리 밀고자들을 기갑부대 지휘부에 배치했다. 지휘체제도 의도적으로 분산시켜 이란과의 8년전쟁 때도 힘을 쓰지 못했다고 러트워크는 말한다.

대조적으로 이란과의 전쟁기간에 이라크는 규모가 큰 공병대를 만들었다. 지뢰밭을 만들고,철조망을 치고 탱크를 막는 호를 파놓으면 적의 공격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그는 말한다.

결국 후세인은 땅 속에 파고 들어간 채 공격을 하지 않고 쿠웨이트를 지킬 것이라는 것이 러트워크의 결론이었다.

그는 그러나 베트남과 달리 사막에서 싸워야 되는 이라크군은 다국적군의 공군 앞에 노출되게 마련이라고 지적한다. 문제의 화학무기도 무방비상태의 민간인이나 한 군데에 집결돼 있는 군인에게나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미군을 지휘하고 있는 슈왈츠코프 장군도 이라크의 화학무기나 사우디아라비아 유전파괴는 걱정할 게 못 된다고 낙관한다. 다만 쿠웨이트 유전의 파괴는 손쓸 도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후세인이 믿는 것은 어설픈 스커드미사일이나,전세계의 분노를 살 화학무기나,또 꽁꽁 숨겨놓은 소련제 전투기보다는 그를 신주처럼 믿는 병사들의 「참호전」일 것이다. 「덴노(천황)」를 위해 죽겠다던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과도 같은 상황이다.

○불구경은 혼을 뺏는다

8년 동안의 이란­이라크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흔히 1백만명이 죽었다고 하지만,2백만명이 죽었다는 추산도 있다. 소득없는 8년전쟁 끝에 후세인 대통령은 이제 전세계를 적으로 하는 전쟁을 시작했다.

이 문명개화된 세상에서 독재가 유지되려면 전쟁이 있어야 한다. 22년 동안 수많은 정적들을 처형하고 백성 위에 군림해온 후세인은 어쩔 수없이 또 하나의 불장난을 하고 있다.

다국적군이 얼마만한 희생을 치러야할지는 두고볼 일이지만,융단폭격을 모면한 전투기나 미사일이 쿠웨이트를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압도적인 다국적군의 화력 앞에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군은 고립된 채 참혹한 유혈을 강요당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떤 명분에서건 백성을 죽음의 구렁으로 밀어넣는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또 하나의 살아 있는 교훈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또 역사상 처음으로 이웃동네 불구경하듯 쿠웨이트전쟁의 불길을 「생중계」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불구경에 넋이 나가 발밑을 잊어선 안 된다.

얼빠진 베짱이처럼 흥청망청 「세계 사치품올림픽」을 벌여온 졸부들의 행진을 이 기회에 뿌리뽑는다면 쿠웨이트의 불길을 거꾸로 우리에게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기업과 정부와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물가를 잡고 수지적자의 시련을 넘겨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30년 만에 치르는 지방선거라는 큰일을 앞두고 있다. 이웃동네 불구경에 행여 정신을 잃어선 안 된다. 지방선거야말로 이 나라 민주주의의 장래를 가름하는 갈림길이기 때문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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