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가지 정적속 포연자욱/만불주고 렌터카 긴급마련/촬영들켜 군연행 한때 긴장/국경검문소서 테이프 압수위기 넘겨【암만=이상석 특파원】 『다국적군의 1차 공습을 받은 바그다드 시가지는 유령의 도시처럼 정적에 싸인 채 포연이 자욱했고 화약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다국적군의 첫 공격이 개시된 17일 하오 2시 바그다드를 필사적으로 탈출,요르단 국경을 거쳐 33시간만인 18일 밤 11시 요르단 암만에 도착한 MBC취재반의 강성주 기자(39·국제부)는 바그다드 탈출 당시를 이렇게 말했다.
강 기자는 서태경(35·카메라 취재부),황성희(30·〃),이진숙 기자(31·사회부) 등과 함께 한국보도진으로 바그다드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다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MBC취재반이 이날 암만에 특파된 한국기자들에게 밝힌 공습상황 및 탈출경로 등은 다음과 같다.
공습은 언제 알았는가.
▲후세인 대통령궁이 바라보이는 팔레스타인 메리디앙호텔에서 17일 새벽 1시께 서울에 송고한 뒤 잠이 들었는데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과 대공포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새벽 2시30분이었다. 11층 발코니에 나가보니 하늘은 마치 푹죽을 쏘아 올린 듯 대낮같이 밝았고 공습은 티그리스강 건너편의 대통령궁에 집중되고 있었다.
10분 후 내려간 호텔지하 대피소에서는 이미 투숙객 주민 등 1백50여 명이 불안한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언제까지 공습이 계속됐나.
▲상오 7시께까지 간헐적으로 계속되다가 잠잠해 지더니 8시,11시께 공습이 재개됐다. 호텔내 이라크 문공부관리는 국방부 건물이 파괴됐다고 말했다.
공습당일 시민과 시가지 표정은.
▲이란과의 장기전쟁으로 공습과 대피에는 익숙해 있었으나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거리에는 피란민들이 간혹 눈에 띌뿐 시가지는 쥐죽은 듯 적막이 감도는 속에 곳곳에서 포연이 피어올랐다.
탈출상황에 대해.
▲상오 10시30분께 이라크 문공부에서 출국허가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오 2시께 인도방송기자 3명,호주신문기자 1명 등과 함께 우리가 타던 렌터카 기사의 9인승 밴(소형버스)을 타고 출발했다. 1인당 4백 이라크 다나르(약1천3백달러)를 주었으니 3팀이 1만불 가까이 지불한 셈이다. 암만으로 가는 고속도로상에서 보니 B52중 폭격기가 바그다드 시 외곽에 있는 H3공군기지를 폭격하고 있었으며 F15기 등 전투폭격기들은 바그다드 쪽으로 계속 날아갔나.
위험하지는 않았나.
▲주유소 앞에 장사진을 이룬 피란차량 행렬을 카메라에 담던 황 기자가 이라크군에 연행됐다. 그들이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해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라크가 발급해준 출국허가증을 보여주자 풀어주었다. 밤이 되자 이라크군이 미사일을 실은 대형트럭을 이동시키는 광경도 목격됐다. 밤 11시께 이라크 국경의 트레빌 검문소에 도착한 뒤 난관에 봉착했다.
일행을 태우고온 소형버스운전사가 우리를 스파이로 오해,국경검문소에 신고 한것이다. 이라크 문공부 직원이 올때까지 우리는 차속에서 웅크리고 초조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공습장면을 취재한 테이프도 압수될 뻔했으나 공테이프를 내보여 모면할 수 있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일행은 18일 상오 8시께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바그다드에 잔류한 현대건설 직원 22명의 행방을 아는가.
▲공습 전날인 16일 저녁 이들과 식사를 같이했을 때 19일께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습 후 통신이 두절돼 연락이 불가능했는데 바그다드에서 이란 국경쪽 7백㎞ 지점인 라마디에 쪽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바그다드에는 외국기자들이 얼마나 있다. ▲CNN,로이터,소련의 우크라이나 통신 등 80여 명이 호텔에 반억류상태로 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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