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텔아비브 잠옷 바람 대피/“호텔이 안전” 시민들 대거 투숙/통화신청에 교환원 “나도 대피”/무더위속 방독면 “땀뻘뻘”… 여인들 울먹【텔아비브=강병태 특파원】 텔아비브의 토요일 아침은 미사일 공격과 함께 시작됐다. 유대교 휴일 사바트가 시작되는 금요일 밤을 불면으로 지새우다시피 했던 텔아비브시민들이 늦은 새벽잠에 취해 있을 시각인 상오 7시20분께(한국시간 하오 2시20분)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서울 통화중 폭발음
지난밤 상황을 서울로 전하기 위한 기사작성을 중단하고 서울과 막 통화를 시작하는 순간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둔중한 폭발음이 울렸다. 사이렌이 울린 지 1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17층짜리 힐튼호텔이 가볍게 흔들릴 정도로 폭발은 컸다. 호텔 북쪽 시 중심부에 미사일이 떨어진 것으로 짐작됐다. 1㎞ 이내 거리가 분명했다.
전화통화를 중단하고 호텔에서 지급받은 가스마스크를 들고 비상계단을 통해 호텔 6층의 긴급대피소로 달려가는 투숙객들의 뒤를 따랐다. 대부분이 채 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공습을 받은 듯했다. 잠옷 차림에 가스마스크를 쓴 부인네들도 있었다.
대피소는 6층 전체 객실의 창문과 엘리베이터를 검은 비닐테이프로 막아 임시변통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지하대피소는 환기장치를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화학전 대비 상황에서는 오히려 위험해 쓸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투숙객 3백여 명과 종업원 1백여 명 등 4백여 명이 통로를 가득 메웠다. 밖으로 향한 객실은 폐쇄됐다.
○지하대피소는 더 위험
혼란은 없었다. 그러나 전날 밤 잘못된 공습경보로 대피했을 때와 같은 여유는 없었다.
호텔 프레스센터에 상주하는 군 대변인 라난 대령은 『이번엔 진짜다』라며 기자들과 농담을 주고 받았으나,울먹이는 여인들이 있었다.
라난 대령은 경보해제 후 『미사일 3발이 텔아비브시 주변에 떨어져 10명이 경상이다』고만 말했다. 정확한 피격지점은 밝힐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시 객실로 들어가 서울통화를 신청하려고 했으나 여자교환원은 『나도 대피해야 한다』며 거부했다. 서방기자들은 휴대용 전화기로 부산하게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휴대용 전화기 맹활약
대피소는 무더웠다. 가스마스크를 쓰고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호텔경비 무장군인들과 서구기자들은 방호용 고무옷과 장화로 완전무장한 채 버티고 있었다.
40여 분이 지난 상오 8시께 경보가 해제됐다. 호텔방의 이스라엘 제1TV는 곧장 어린이 만화와 가요프로를 방송하고 있었다.
호텔밖 시가지를 내다보아도 화재나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 승용차 몇 대 만이 달려가고 있을 뿐 도시는 적막했다.
○전쟁과 평화가 공존
군정찰기 1대가 시가지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호텔이 있는 해변 쪽의 지중해는 한가로웠다. 통행이 금지된 해변 모래사장을 개를 데리고 거닐고 있는 부부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전쟁과 평화가 나란히 공존하고 있었다.
전날 저녁 8시40분께도 공습경보가 한차례 울렸었다. 18일 새벽 이미 한차례 미사일 공격을 겪은 투숙객들의 대피는 재빨랐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록 폭발음이나 피격뉴스가 없자 노인네들은 이스라엘 특유의 흥겹고 박력있는 노래를 합창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기자와 일본 기자들에게 유난히 호의적인 인사를 건네왔다.
○첨단방공망 역할 못해
18일 새벽의 1차공습 공격과 이날 저녁의 오보,그리고 19일 새벽의 긴박한 경보 등으로 미뤄볼 때 미국과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최강의 경보,방공망도 후세인의 스커드미사일에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날 저녁 공습경보 해제 후 TV방송은 사바트 금요일 밤의 인기 토크쇼를 그대로 방영했다.
50대의 남자 가수는 후세인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내용의 노래를 신나게 열창했다. 호텔로비에 가스마스크를 든 채 모여 있던 이스라엘 투숙객들은 박장대소하는 등 여유만만했다.
키나라고 이름을 밝힌 40대 여인은 『67년 전쟁부터 3차례 전쟁을 겪었고,5개월 이상 이번 전쟁에 대비했다』며 「여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호텔투숙객의 대부분이 이스라엘인들인 이유를 묻자 망설이다가 『사실은 오늘 저녁 공습에 대비,안전한 호텔로 피신한 사람들』이라고 귀뜸했다.
○피격지점 보도 규제
이라크는 18일 아침 『오늘밤 지중해 전역이 잠들지 못할 것』이라고 위협했었다.
원래 텔아비브시민들은 사바트 금요일 밤을 각종 환락으로 즐기느라 새벽 늦게까지 잠들지 않는다.
그러나 평소 새벽 2,3시까지 붐비던 유흥가 등 거리는 적막했고,시민들은 창문을 모두 비닐테이프로 봉한 집안에서 가스마스크를 곁에 둔 채 잠들지 못했다.
화학무기 탄두를 사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상황에서 후세인의 미사일 공격은 지금 적지 않은 심리적 효과를 거두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군당국은 이라크의 미사일 공격과 관련,정확한 피격지점을 밝히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라크측이 피격지점을 파악할 경우 추후공격에서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3발의 미사일 중 한 발은 힐튼호텔에서 멀지 않은 시내 서민아파트 밀집 주택가에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3백m까지 유리 파편
미사일은 주택가 지하방공호 위에 떨어져 방공호가 파괴되고 깊이 3m,폭 10m 가량의 구덩이가 됐다. 주변 예술센터건물과 아파트 등의 셔터·유리창 등이 모두 부서져 파편이 주변 2백∼3백m까지 널려 있었다.
피격 당시 주민들은 방공호로 대피할 여유가 없어 대개 집안에 머물러 있었고,이 때문에 인명피해는 경상자 10명에 그쳤다.
피격현장에는 나하르 텔아비브시장과 인도 태생의 이스라엘 지휘자 주빈·메타가 나와 후세인을 규탄하는 내용의 인터뷰를 가졌다.
○“인내에도 한계” 표명
이스라엘 군당국은 외신기자들을 피격현장에 안내했으나 피격지점을 밝히지 못하게 하는 등 피해상황에 대한 보도를 검열,세계적 명성의 주빈·메타와의 인터뷰 등으로 대외홍보에 치중하는 인상이었다.
군당국은 19일 검열지침을 어기는 경우 「엄격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스라엘 군당국의 이같은 반응은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미사일 공격에 따른 심리적 충격효과를 크게 우려하고 있고,「인내」가 한계에 왔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자제」에 익숙지 않다. 페만전의 전망은 밝지 않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