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샵에 집결” 통화후 두절/“농장대피” “탈출길” 추측/잔류동기 노사 주장 상반/귀국 근로자 “성전선포등 전혀 몰랐다”폭격의 불바다로 변한 이라크에 고립된 현대건설 직원 22명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정부가 전원철수령을 내렸는데도 이들이 현지에 남게 된 이유와 경위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정부와 회사측이 개전시기와 가능성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해 뚜렷한 안전대책없이 잔류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들은 바그다드 동북방 70㎞ 지점인 바쿠바의 현대 하청업체 소유의 농장에 집결·대피중이거나 이곳을 출발해 탈출길에 오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지난 16일 하오 7시40분께의 마지막 통화에서 현지 책임자인 김종훈 이사(49)는 『알무스 바스라 키와스 베이지 등에 흩어져 있던 전원이 바그다드 변두리 알샵의 사업본부로 집결했고 이라크 여인과 결혼한 2명을 제외한 20명 모두 출국허가동의서를 발급받았다』고 본사에 알려왔다.
이라크인 처를 둔 박휴중씨(36)와 이영철씨(44)는 아예 출국허가신청을 하지 않은 채 가족들과 함께 이곳으로 대피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책본부(본부장 하오문 전무)는 『현지에서 전황을 판단해 바쿠바로 대피했다가 적당한 시기에 이란 국경을 육로로 통과하도록 지시해두었다』며 『바쿠바는 군사시설이 전혀 없어 이란이라크전쟁 때도 피해가 없었던 안전지역』이라고 밝혔다.
대책본부는 또 『지난 14일 이미 전원철수를 지시했으나 각 현장에 최소한의 인원이 남아줄 것을 원하는 이라크당국이 출국허가를 내주지 않아 지체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지난 15일 대책본부가 『1차로 37명이 요르단으로 탈출해 KAL 특별기에 탑승했고 나머지도 출국허가를 받는 대로 탈출중』이라고 말했을 때 외무부와 건설부는 『22명은 회사·개인사정으로 잔류를 자원했고 이들에게 정부가 철수를 강제할 수는 없다』고 밝힌 바 있어 철수과정에 혼선이 있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로 현대측 상황자료에는 15일 현재까지 알무스 2명,바스라 2명,베이지 2명,키와스 6명 등이 현장을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돼 있어 이들은 16일에야 알샵으로 대피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건설의 한 간부는 『현지와의 통신이 두절돼 정확치 않으나 어음회수·시설경비·발주처와의 협상창구 유지 등 때문에 누군가 남아주길 원했고 자원자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해 ▲정부의 묵인 ▲회사의 기득권 유지 ▲보수 등을 고려한 근로자의 자원 등이 맞아떨어져 22명이 잔류한 것임을 시사했다.
자국민들이 남아 있는데도 공관 직원들이 15일에 전원철수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16일 KAL 특별기로 귀국한 직원들은 정부와 회사측이 22명의 고립을 자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키와스 현장에 있었던 양시형씨(39)는 『회사측이 공사가 마무리단계라며 누군가 남아줄 것을 희망했다』며 『남을 경우 월급을 다 주고 철수하면 덜 준다는 말에 6명이 남았다』고 밝혔다.
알샵사업본부에 근무했던 나정윤씨(30)는 『현지에 있는 동안 전쟁발발 가능성은 생각지도 않았다』며 『회사측으로부터 이라크가 성전을 선포한 사실 등을 전혀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바레인 아스라항에 있었던 팽창석씨(34)도 『회사측이 「아무 걱정없다」고 말해 외무부 민원실에 전화도 해보고 주바레인 대사를 만나 「전쟁은 안 터진다」는 말을 듣고 녹음까지 해두었다』면서 『단파라디오를 듣고야 8일부터 연명으로 귀환신청서를 작성해 특별기를 타게 됐다』고 주장했다.
현대측의 당초 철수계획에는 요르단 국경을 넘는 것으로 돼 있었으나 바쿠바로부터 국경이 6백㎞나 되고 요르단의 입장도 불분명해 고립된 22명은 바쿠바에서 1백10㎞ 떨어진 이란 국경 돌파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 회사측도 테헤란에 이재호 이사를 급파,입국비자를 미리 발급받고 국경검문소에 버스를 대기시키는 등 비상대책을 펴고 있다.<신윤석 기자>신윤석>
◎현지인과 결혼 3명 귀국 포기/국내 가족 “운명에 맡길 뿐” 눈물
이라크에 남은 대사관 직원과 현대건설 직원 22명의 국내 가족들은 아들과 그 가족들의 안부를 몰라 애를 태우고 있다.
특히 이들 23명 중 3명은 현지에서 이라크 여인과 결혼한 처지여서 귀국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에 혼자 남은 박상화씨(34)의 가족들은 박씨의 안부에 가슴을 죄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89년 1월 삼성종합건설 총무과에 근무하던 중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 고용직으로 들어간 박씨는 지난 15일 대사관 직원 전원이 요르단으로 철수하면서 함께 갈 것을 권유했으나 현지에서 결혼한 이라크인 아내를 두고 떠날 수 없다며 대사관을 지키겠다고 자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가 10여 년 전 별세,어머니 역할까지 한 누나 춘자씨(46)는 서울 성동구 행당 2동 329 집에서 『지난 16일 새벽 1시께 마지막으로 걸려온 전화통화에서 빨리 돌아오라고 재촉했는데도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더니…』하며 말끝을 흐렸다.
○…이라크 잔류를 고집했던 현대건설 사업본부 직원 박휴중씨(36)의 노부모 박경래씨(75)와 이선우씨(68·여) 부부는 『이젠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걱정이 태산같다.
이씨는 아들이 전쟁발발 8시간 전인 17일 새벽 1시께 바그다드에서 전화를 걸어와 『아내와 3형제 모두 잘 있으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고 전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85년에 이라크로 건너가 1년 뒤 현지 여인과 결혼했던 현대건설 자재과 직원 이영철씨(44)의 노부모 이도현씨(76·서울 은평구 신사동 19의119)와 윤영정씨(64·여)도 라디오와 TV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아들과 며느리 후세인·아말리씨(38)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노부부는 유난히 금슬이 좋았던 셋째 아들 내외가 1년 전 휴가차 귀국했을 때 재롱을 부리던 손녀 수인양(4)의 모습이 특히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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