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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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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1.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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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큰 몸집은 언제나 분위기를 압도하는 듯 했다. 그는 소주도 늘 큰 유리컵에 따라 벌컥벌컥 들이켜는 애주가요 호주가였다. 줄담배를 즐겼던 그는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아 한 쪽 폐를 들어내고도,의사의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술을 즐겼다. 점심에도 소주 두 병을 유리컵에 따라 마셨다. 『의사가 마시지 말라니까 두 병만』 든다는 것이었다. ◆『서서 죽을지언정 무릎꿇고 살지 않겠다』는 것은 15일 67세의 생애를 끝마친 천관우 선생이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와 싸울 때 한 말이다. 그는 큰 체구만큼 기력이 남보다 뛰어나고,정열적이었다. 그는 한국일보 초창기에 <메아리> 라는 칼럼을 시작해서,한국언론사상 칼럼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선구자이기도 했다. 역사학도로서의 안목도 큰 구실을 했다. ◆그가 한국의 현대사에 우뚝 솟은 것은 아무래도 70년대 유신독재의 혹독한 탄압이 이 땅을 어둡게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민주수호국민협의회 민주회복국민회의 공동대표로 이 땅의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이 무렵 그의 집은 늘 감시의 눈이 지켰고,그가 외출할 때에도 감시담당자가 따라다녔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언론인일 뿐만이 아니라,국사 연구에도 남 다른 업적을 남겼다. 일찍이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 졸업논문 「반계 유형원연구」로부터 시작해서 그는 조선왕조 실학파연구 붐의 선구가 됐다. 무엇보다도 그는 70년대 유신독재시대 세상에서 격리돼 있을 때 중요한 업적들을 내놨다. 고조선에서 삼한시대와 광개토왕릉비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연구를 내놨다. ◆이 시대에 그가 내놓은 「복원 가야사」는 고대 한일관계 연구에 전환점을 이룬 업적이다. 그는 지난해 이 연구를 마무리 짓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었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그는 눈을 감았다. 소위 「임나 일본부」의 허구를 깨는 마무리 작업을 기대했던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애석한 일이다. 이 나라의 암울했던 현대사와 대결했던 한 거인의 파란 많은 생애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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