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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지도자의 요건/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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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지도자의 요건/안병영 연세대 사회과학대교수(정치진단)

입력
1991.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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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동기보다 민생동기 인물 발굴을신년초 어느 TV방송에 정치학자 2백명이 선정한 차세대 정치지도자 9명이 등장하여 많은 이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여기서 선정자들이 이들 개개지도자들을 선호하는 이유가 제시되었는데,그들이 은연중에 공통적으로 중시했던 덕목들로는 도덕성,민주의지 그리고 정책수행능력이 거론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프로그램을 보며 이제껏 우리 사회의 이른바 「세대교체론」이 기존 정치보스들의 정치무대로부터의 「퇴장」문제에만 논의를 집중한 채 차세대 지도자가 규범적으로 갖추어야 할 정치적 덕목과 또 이들이 정치무대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논의를 소홀히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위에서 제시된 차세대 지도자들의 자격요건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는 바가 컸다. 오늘날 많은 국민들의 정치불신의 주된 원인이 정치인의 비도덕성에 있음을 감안할 때,우리 사회의 정치적 도덕성에 대한 규범적 요청은 매우 절실한 바가 있다. 따라서 차세대 지도자는 적어도 도덕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정치·경제적 민주화가 아직 제 궤도에 오르지 않은 오늘의 시점에서 정치지도자의 민주의지 또한 소홀히할 수 없는 대목이다. 따라서 지난날의 정치편력에서 권위주의 정권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며 집권문화에 흠뻑 젖어버린 구시대의 때묻은 인물은 아무리 자연적인 연령이 낮아도 새 정치지도자로서의 요건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다음 정책수행능력은 정책구상 및 수행능력을 포괄하여 아예 정책능력이라고 표현하는 쪽이 더 나을 성싶은데,이는 다가오는 21세기의 한국을 조타해야 할 차세대 정치인들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정치적 덕목이라고 본다. 정책능력은 정치인의 정치적 비전과 정책의지,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최소한 의지적·전문적 능력의 바탕을 뜻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미래투시 및 미래관리능력으로서,아무리 도덕성과 민주의지가 출중한 정치인이라 해도 정책능력의 결손이 두드러지는 경우 그에게 이 나라의 국운을 맡길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위의 세 가지 자격요건중 앞의 두 요건은 민생동기에 근거한 민주적 정치쇄신의 의지를,그리고 뒤의 것은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함축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들 요건을 고르게 두루 완비한 진선진미한 정치지도자를 찾기란 실로 지난하리라고 본다. 따라서 여기에는 어차피 상대적 평가에 의한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따른다.

보다 본질적 맥락에서 볼 때,구정치인들 중에도 위의 세 가지 요건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면 굳이 연령 때문에 정치무대로부터의 강제퇴장을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실제로 많은 이가 세대교체를 논의할 때마다 거론되는 몇몇 정치보스들에게 식상하고 점차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민생동기보다 권력동기에 지나치게 탐닉하여 온갖 정치활동을 대권이라는 단일목표에 환원시키고,언필칭 민주화를 외치면 반민주적 보스정치문화의 뿌리를 이 땅에 깊숙히 내렸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똑같은 이유에서 아무리 자연적 연령으로 차세대에 속하는 인물이라도 정치쇄신의 의지는커녕 권위주의적 사고와 행태를 온존하고 있는 인물이라면 그에게 있어 차세대라는 시간적 범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음 차세대 지도자의 정치적 부상의 방법과 경로를 생각해보자. 우선 앞질러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들은 국민의 품 속에서,또 국민의 손에 의해 정치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고 정치지도자나 정파보스의 점지나 총애에 의해 하루아침에 국민의 사랑과 무관하게 정치권 안에서 고속성장한 정치지도자는 차세대 정치지도자로 걸맞지 않다고 본다. 이들이 개인적·지역적 연고나 현실정치적 권력차원을 바탕으로 정치적 세를 구축하고 하루아침에 차기 대권의 후보로까지 부상하는 예는 아마도 민주정치가 정착된 어떤 나라에서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한다. 이른바 풀뿌리민주정치의 참된 의미를 되씹을 때,역시 정치적 정당성의 연원은 국민의 자연스러운 정치적 지지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차세대 지도자의 정치적 부상은 또한 당내 민주주의의 바탕과 밀접히 연관된다고 보여진다. 이렇게 볼 때 정당정치의 대중적 기반은 물론 당내 민주주의적 관행이 정착되지 못한 채,당수가 공천권과 당직임명권 및 정치자금 등 온갖 정치적 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 속에서 차세대 지도자의 정치적 부상은 실제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정치보스들이 대권야망을 버리지 않는 이상 차세대 지도자들을 자신에 버금가는 큰 그릇으로 키울 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당권도전은 자칫 당내에서 정치적 파문의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그러나 어차피 차세대 지도자들이 정치적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보스중심문화에 강하게 도전하면서 당내 민주주의를 통하여 정치적 돌파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당내에 자유로운 토론문화와 경선제도의 확립없이는 스스로의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계파를 형성하는 경우 지역연고나 공리적 타산에 의한 인적 연계를 넘어 정치적 비전과 정책의지의 공유를 바탕으로 조직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으로써 당원과 국민에게 차세대 지도자의 새로운 면모를 선보여야 할 것이다.

오늘처럼 정치구도가 불안전하고 새로운 정당체제의 구축이 모색되는 과도기적 상황 속에서는,차세대 지도자들이 기존 정당의 틀과 제도권의 벽을 뛰어넘어 폭넓은 정치적 제휴를 시도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차세대 지도자간의 이러한 상황돌파 노력은 이들이 손쉽게 정치무대의 한가운데로 들어설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단순히 세를 구축하기 위한 인적 규합이어서는 안 되고 역시 정치적 이념이나 정책 내지는 새로운 정치양식 등의 공유를 바탕으로 뭉쳐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세대의 바뀜이 정치질서의 쇄신과 새로운 정치문화의 정착으로 승화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본다.

바람직한 차세대 정치지도자들을 발굴하고 키우는 일은 결국 우리 국민의 책임이라고 본다. 차세대 지도자들에 대한 국민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없이 이들이 국민의 품 속에서 성장하기 어려울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차세대 지도자들을 굳이 제도권 정치 안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국민의 편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며 헌신적으로 사회운동이나 시민운동을 벌여온 사회일꾼들 중에도 큰 재목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

새로운 정치지도자의 발굴과 정치구도의 개혁이라는 현단계 한국정치의 중심과제를 동시에 성취하기 위해서는 향후 2,3년 동안 우리 국민의 슬기로운 정치적 선택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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