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발생원인을 놓고 오늘날 범죄학에서는 개인의 생리적 요인보다는 사회적 요인을 으뜸으로 꼽는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기에 범죄의 성향·동기 등도 사회현상과 상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사회적·도덕적 무질서를 뜻하는 아노미현상이 범죄다발을 불러오는가 하면 모방범죄도 해가 갈수록 불어나기만 하는 것이다.16일 그 진상이 밝혀진 현직 경찰관과 전과3범 정보원간에 빚어진 대구에서의 총기살인게임(러시안룰렛게임)도 그 원인을 따져보면 국내에서도 상영된 영화의 장면을 본뜬 표본적 모방범죄이자 경찰복무기강의 문란마저 두루 겹쳐진 사건이어서 충격적이다.
어쩌자고 월남전 반대 미국영화 속에서나 상식적으로 등장했던 가상의 게임이 엉뚱하게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가 있는지가 우선 놀랍다. 그리고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유행이 되는 일이라면 무조건 모방하고 보자는 우리의 뿌리없는 사회풍토가 걱정스럽다. 이대로 가다가는 남의 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난 범죄뿐 아니라,영화·TV·비디오나 소설 등에서 마구 등장하는 가상범죄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는 면역기능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범죄다발과 민생치안이 「우리에게 내일이 없다」는 투의 값싼 서구문화 찌꺼기에 무방비로 오염된 탓이라는 징후가 있어왔다.
마피아식 폭력범죄집단의 발호,우리 전통이나 윤리에 비춰 전례가 없는 공중전화 독촉살인이나 일가생매장사건,그리고 가정파괴사범의 빈발 등이 그랬던 것이다.
교통·통신의 발달과 문화 및 왕래의 개방으로 세계는 이제 한 울타리 안에 있다. 그래서 좋은 일뿐 아니라 궂은 일도 알게 모르게 단기간내에 전파되게 마련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의 전통과 가치 등 고유한 동질성을 잃을 정도로 정신을 놓고 있어서는 정말 곤란하다. 문화교류의 미명하에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저질의 폭력·범죄·외설영화나 TV·비디오 및 간행물들을 언제까지 줏대없이 방치만 할 것인가를 먼저 당국에 묻고 싶다. 그리고 그 같은 저질외래문화에 대항하면서 한국적 문화풍토를 지키고 가꿔낼 지식인·문화예술인들의 사명도 막중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에겐 국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채워줄 책무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 안방에마저 퇴폐문화가 범람토록 방치,자녀들을 오염시키는 가정에도 책임의 일단이 있음도 모두가 자각해야 할 것이다. 모방범죄를 단속하고 계도해야 할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관마저 총기살인게임에 가담할 지경이면 우리 사회의 아노미현상은 확실히 중증임이 이번에 여지없이 드러났다. 당국이나 지식인,그리고 각 가정에서 하루빨리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그 실천에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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