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그 시각은 오고 갔다.온세계가 숨을 죽인 채 지켜보던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군시한은 이곳 요르단의 암만 시간으로 16일 아침 7시.
기자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취재차 이곳에 머물고 있는 기자들은 전날 밤 호텔방에 모여 앉아 비상대책을 논의했다. 전쟁이 터질 경우 요르단도 전쟁의 와중에 휘말려들 게 뻔한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D데이 이후 곧 미국의 공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서방언론들의 호들갑 때문에 한국기자들은 전쟁임박설을 수긍하고 있었다.
유사시 한국대사관측과 행동을 같이하기로 했지만 모두들 마음은 뒤숭숭했다.
이날 낮 돌아본 암만시내의 표정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평온했었기 때문이다. 외국공관을 지키는 경비병력을 빼고는 어디서도 군의 움직임을 볼 수 없었다. 식당과 상가도 정상영업중이었고 사재기도 없었다.
이날 저녁 시내 일원에서 벌어진 반미 촛불시위는 차라리 낭만적인 느낌이었다. 바그다드에서 도착한 여행객들도 암만과 바그다드의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바그다드의 반미시위가 비장한 각오보다는 축제분위기였다니,그게 종교의 힘인지 이란과의 오랜 전쟁에서 체득한 숙명적인 생사관 탓인지 모르겠다.
전쟁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는 정말 알라신만이 아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분명한 것은 「그날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 대전의 상처가 아직도 생생한 마당에 가공할 무기가 사용될 미·이라크전쟁이 인류에게 무슨 교훈이 될 것인가.
세계는 소수의 폭군적 인물들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아왔다. 지금의 페만사태도 이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지 모른다. 온인류가 갈망하는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세계질서는 반드시 뿌리내려야 한다. 하지만 전쟁의 페허 위에 세우는 새로운 세계질서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후세인과 미국인들은 곰곰 생각해야 할 것이다.<암만에서 이상석 외신부 기자>암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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