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외로 피난행렬·식량구입 장사진/관영 매스컴들 결사항전·승리 다짐유엔의 철군요구를 무시하고 있는 이라크는 철군시한인 15일이 미국 등 다국적군으로부터 언제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매일 시달려야 하는 불확실한 나날이 시작되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는 15일이 밝아오면서 이같은 불안감이 급속히 번지고 있다는 것이 현지에 남아 있는 한국인들이나 외신기자들이 전하는 표정이다.
바그다드 시내에도 이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으며 차량 지붕에 이삿짐을 싣고 교외로 빠져나가는 승용차의 행렬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주요 관공서를 경비하는 군인들이 점차 보강되고 있으며 군인들을 태운 트럭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새로운 변화다.
또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배급소 앞에 늘어선 줄이 더욱 길어지고 있으며 각 주유소에는 휘발유를 넣으려는 차량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특히 휘발유를 미리 사두려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휘발유통의 가격마저도 3배나 뛰었다.
소비재도 날로 귀해지고 매일 가격이 치솟고 있는데 담배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형편이다.
이라크정부는 1월 들어 바그다드내 각 호텔에 정부관리를 파견,하루에도 몇 차례씩 민방공 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호텔측도 전시 대피요령이 담긴 안내문을 투숙객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이라크정부는 국민들에게 화학전에 대비한 방독면을 지급한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아직 지급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암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방독면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도 일반 시민들 중에는 미국이 쉽사리 이라크를 공격치 못할 것이라고 애써 낙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것은 죽음을 숙명으로 생각하는 아랍인의 사고방식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라크 언론들이 일방적으로 이라크 입장만을 선전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이라크 관영언론들은 14,15일에도 이라크가 미 제국주의자들과 그들 편에 붙은 부패한 아랍국가들을 설명할 것이라는 선전방송을 계속했다.
바그다드방송이 14일 보도한 사우디에 보내는 사담·후세인 대통령의 성명은 『사우디가 외국군을 불러들인 것은 이라크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전쟁이 벌어지면 수십만 명의 사우디인들이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이날 방송중에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이라크 게릴라부대가 다국적군을 공격할 것이라는 한 공군 지휘관의 위협도 있었다.
관영신문들도 결사항전과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정부기관지 알윰후리야지는 14일 『우리는 쿠웨이트 영토회복이라는 꿈을 이루었으며 이제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노력할 시기』라며 『이라크인은 예루살렘에서 기도를 올릴 준비가 돼 있다』고 장담했다.
전쟁의 징후는 바그다드 외교가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외교관들을 철수하거나 대사관을 폐쇄하는 국가들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15일에는 일본대사관이 외교관 1명만 남겨놓은 채 암만으로 탈출했다.
한국대사관은 최봉름 대사 등 4명이 이날 상오 비행기로 암만으로 철수하고 박상화 영사보(37)만이 혼자 남아 대사관을 지키고 있었다.
전날에는 현대와 삼성 등 우리 기업체 근로자 60여 명이 육로로 출국하려다 요르단측이 서류 미비를 이유로 입국을 거부,되돌아오기도 했으나 서류를 보충한 뒤 15일 모두 요르단으로 들어왔다.
이에 따라 이라크에 남아 있는 우리 근로자들은 현대건설 소속 23명뿐이다.
바그다드에 잔류한 현대건설 김무웅 기술부장(48)은 15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잔류 근로자들은 모두 자원한 인원』이라며 『당분간 사태를 관망하다 사정이 악화되면 잔류인원도 전원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잔류 근로자들도 이미 출국비자를 받아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출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잔류 근로자 23명 중 10명은 바그다드 본사에 있고 나머지는 바스라 항만공사장 등 주요 공사현장에 남아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아랍인의 낙천적 성격 탓인지 이라크인들이 전쟁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며 『한국인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암만(요르단)=이상석 특파원>암만(요르단)=이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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