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TV심야토론에 나온 여당의 모 중진이 우리나라 국회가 언제는 「날치기 통과」를 시키지 않은 적이 있는가고 역설적으로 반문하면서 민자당의 23개 법안 날치기를 변호하는 발언을 했을 때 받은 인상은 나쁘지만은 않았다. 솔직하게 나온 그의 답변에서 야당 쪽의 문제도 알 수 있었지만,사실은 그 정도의 정직한 것처럼 보이는 태도를 국회의원에게서 발견한 것이 다행인 것 같은 심리가 작용한 탓도 없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된다.세비 23% 인상에 이어 대규모 외유를 준비중이라 해서 여론이 나쁘게 돌아가자(본란 90년 12월24일자) 여야가 앞다투어 외유를 스스로 자제하거나 포기하는 움직임을 보여 그 문제는 일단락된 줄로 국민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다.
여야 의원들은 여론이 잠잠해지자 야반도주하듯이 모두 해외출국했다는 것이며 그 수는 1백명 선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극비리에 출국들을 했는지 그 전모를 아는 언론기관조차 없다.
그럴밖에는 처음부터 당당하게 출국하고 말 것이지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새삼스럽게 제13대 국회의원들의 정직성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가 한껏 부풀어 오른다. 국회의원의 외유시비와 함께 벌인 세비 23% 인상과 반납을 둘러싼 단막극도 역시 정직하지 못한 데서 나온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들이 해외여행을 통해서 견문을 넓히고,입법자료를 수집해서 국리민복을 위한 입법활동에 이바지하는 것은 필요하다. 국가간의 이해증진을 위해 의원외교가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초청된 것이 아닌 이상 연말연시에 외국에 가보았자 노는 일 이외에 할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일부 의원들은 휴양지와 관광지가 밀집해 있는 파리,취리히,암스테르담 등 유럽지역과 피한지인 방콕과 싱가포르 등지로 골프채를 들고 공무출장 명목으로 나갔다는 뉴스까지 확인되고 있다.
더구나 때도 좋지가 않았다. 전쟁이냐 평화냐의 갈림길에 선 페만사태로 경제적 난국에 처해 있는 위기상황에서,의원들이 한가롭게 외유로 주유천하를 할 때인가 묻고 싶다. 구랍 국회는 정기국회에서 국민의 혈세를 다룰 예산심의마저 건성으로 다뤘을 뿐 아니라 추곡수매동의안 등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등 국회의 제기능을 다하지 못한 형편이었다. 앞에서는 여론을 수용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외유를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속의원들에게 출국을 자제시켰다가 슬그머니 후퇴해버린 수뇌부의 안팎 다른 행동은 어느 쪽이 진심이었다.
외유의원들의 명단,행선지,소일내용,외교활동 유무를 종합해서 국민들이 모두 알 수 있게 했으면 한다.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필요한 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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