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제연기·본격 파병 고개 여/정치위축·운신폭 제약 우려 야페르시아만에 전운이 짙어져 가면서 이를 바라보는 여야 정치권의 시선에서도 우려와 고민의 기색이 보다 구체적으로 감지되고 있다.
사태를 둘러싼 협상추이를 예의 주시해 오던 정가 관측통들은 전쟁발발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자 이 사태가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조심스럽게 진단하는 모습이다.
당장 떠오르는 문제가 여권이 오는 3월로 잡고 있는 지방의회선거의 연기가능성 등 정치일정상의 차질여부와 이달말 군 의료진의 현지파견이 전투병 파병으로 확대될지 모른다는 시각 등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여야의 입장이 벌써부터 편차를 드러내고 있는 데다 사안이 사안인만큼 24일 임시국회가 열리면,「국익논쟁」이 한바탕 벌어질 전망이다.
○…민자당은 최근 들어 페만전쟁이 발발할 경우 정치권에 예상되는 제반사정을 면밀히 저울질하는 인상. 아직 공식적으로까지 수위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위기관리」 차원의 다각적인 내부검토가 진행되는 듯하다.
특히 14일부터 민자당내에서 페만전쟁이 지방의회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보다 뚜렷이 흘러나오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물론 공식적인 언급들은 한결같이 정치·경제가 다소간 악영향을 받더라도 법정시한인 상반기 실시일정은 예정대로 준수된다는 것이지만 이는 미리부터 「벌집」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계파를 불문하고 주요 당직자나 의원들 사이에서는 지난주부터 선거연기의 불기피성이 조금씩 퍼져온 것이 사실.
공식석상에서는 지난 9일 김종호 의원이 당무회의 발언을 통해 『전쟁발발에 대비,정부가 비상대책을 강구하는 데 발맞춰 정치권도 선거연기 방안을 검토해 보자』고 한 게 처음이었으나 야당측의 의심만 샀을 뿐 표면적으론 「개인의 생각」으로 치부됐었다.
선거연기론자들은 『전쟁이 일어나고,특히 장기화될 경우 당장 유류배급제가 실시되는 등 행정·경제가 비상체제로 전환될 것이 확실하다』며 『가뜩이나 경제부문에 큰 부담이 예상되는 선거를 이 같은 비상상황에서 강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는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아침 상도동에서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을 만난 최형우 서청원 의원은 『정치권에서 아무리 선거를 예정대로 치르려 해도 국민여론이 연기 쪽으로 기울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내다봤으며,김 대표는 『페르시아만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이 정말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쟁 후유증이 국가적 위기로 여론이 모아질 경우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지방의회선거의 법정시기를 연기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다.
반면 김종필 최고위원은 이날 『우리는 6·25전쟁 속에서도 선거를 치른 경험이 있다』며 『우리가 전쟁당사자도 아닌데,예정된 선거일정 자체에 영향을 주리라 생각지 않는다』고 연기론에 부정적 반응을 보여 관심. 그러나 이 같은 강행론도 그 당위성 자체보다는 「비상사태」하에서 오히려 긍정적 부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뒤따르는 게 사실이다. 어치파 선거분위기는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제한된 상황에서 「최소의 비용」으로 정치일정의 큰 고비를 넘어갈 수 있다는 계산이라는 것.
한편 개전이 될 경우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란 예측 속에서도 전투병력 파견문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유엔의 결의를 외면할 수 없다는 「원론적」 입장을 강조하는 논리. 특히 황병태 의원 등은 사태악화시 주한미군 재배치와 한국군 파병요구와 선택가능성에 대해 감정차원의 대응을 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평민당 등 야권은 페만전쟁이 가져올 국내정치에의 파장을 예의 주시하면서 우려의 시선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자제선거 실시 등 모처럼 맞이한 「정치의 계절」이 전쟁이라는 외생변수로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된다는 점 등을 분명히하면서도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 않고 있다.
야권은 전투병력 파병가능성은 물론이고 군 의료진 파견까지 반대의사를 분명히하고 있다. 다만 방위비 분담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측의 요청이 있을 경우 고려해볼 수 있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터지고 국내경제가 휘청거려 그 여파가 국정전반에 미칠 경우 야권의 운신폭이 좁아질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정치와 밀접한 함수관계에 있는 경제가 악화되고 이로 인해 민생문제가 심각해질 경우 3당합당의 후유증에서 모처럼만에 깨어나려 하고 있는 정치가 또다시 역경을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야권은 여권일각에서 페만전쟁을 이유로 지자제선거 연기를 주장할 가능성이 있음에 일찍이 대비해왔다.
평민당은 공식회의에서 『어떤 경우에도 지자제선거는 예정대로 치러져야 한다』고 결정했고 민주·민중당 등도 이미 반대의사를 밝히는 설명과 논평을 냈다.
이와 함께 군 의료진 파병에도 반대하고 있던 야권은 정부의 공식 부인이 있긴 했지만 이종구 국방장관이 전투병 파병검토 가능성을 한때 시사했다는 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야권은 전쟁이 현실로 다가올 경우 정부가 미국 등 참전국으로부터 받게 될 경비부담과 참전요구 등의 압력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야권과 국민여론을 역으로 활용해 주길 기대하는 측면도 있다.
즉,정부가 국제정세를 도외시할 수 없는 결정을 하더라도 야권의 반대를 잘 활용하면 모양새를 갖출 수 있고 기대 밖의 실리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조재용 기자>조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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