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 중재로 협상시도 계속/반전무드·미 강령론 변화 노려/정세오판 마지막카드 제시않을 땐 “전쟁”미군을 포함한 다국적군의 가공할 무력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있는 사담·후세인이 갖고 있는 비장의 카드는 무엇인가.
제네바회담이 결렬되고 미국의 무력사용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세계는 페만사태라는 이 세기적 도박에서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끝까지 감추고 있는 승부의 카드가 과연 무엇인지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후세인은 페만사태 발발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동요의 빛을 보이지 않은 채 강경한 입장만을 반복하는 특유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함으로써 서방측을 당황케 하고 있다.
그는 유엔이 정한 철군 최종시한이 불과 나흘 앞으로 임박한 11일에도 여전히 양보할 기색이 없이 대미 「성전」을 촉구,전쟁불가피론을 더욱 부추키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후세인은 서방이 기대하는 「합리적 선택」을 할 인물이 아니며 전쟁을 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들 비관론자들은 이같은 분석의 근거로 ▲후세인이 이라크의 군사력을 과신하고 있으며 ▲전쟁과 순교를 신성시 하는 아랍적 환상에 사로 잡혀 있고 ▲미국이 막대한 인명피해를 낼 전쟁은 하지 못할 것으로 오판하고 있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분석을 일부 수긍하더라도 후세인이 이제까지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성과를 송두리째 상실할 파멸적 전쟁을 자원할 만큼 「무모한 인물」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도리어 후세인은 이번 페만사태를 통해 탁월한 전략가·승부사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과시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후세인은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최대의 군사력을 페만에 집결시켜 철수압력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5개월 이상 장기화해 이미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당초 이라크군의 「무조건 철수」를 주장했던 미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강경입장에서 후퇴,이제는 이라크 철군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보상」을 묵인할 자세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미국은 케야르 유엔 사무총장이 후세인에게 제시할 것으로 알려진 5개항의 평화안에 대해서도 명확한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있다.
케야르 평화안은 ▲이라크와 다국적군의 동시철수 ▲미국을 배제한 중립 유엔군의 쿠웨이트 철수 ▲중동국제평화회담 조기개최 등을 골자로 하고 있어 미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한 제안임이 분명하다.
특히 이 제안은 이라크가 철군의 최우선 조건으로 내세웠으나 미국이 단호히 거부해온 팔레스타인문제와의 「연계」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다.
이 평화안은 EC(유럽공동체) 12개국 외무장관들로부터도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이처럼 페만사태가 종점에 근접하면서 세계의 여론은 이라크의 철수보다는 미국의 양보에 보다 강한 압력을 넣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내에서도 최근 반전무드가 확산되고 의회 역시 전쟁에 대한 찬반론으로 분열돼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후세인은 시간을 더 끌어 보다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그의 카드를 아직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11일 후세인은 성명을 통해 『신의 도움으로 승리가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현재의 사태전개에 대한 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게 했다.
후세인의 카드는 물론 쿠웨이트 철수이지만 그는 이 카드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후세인이 철군 최종시한이 지난 뒤 어느 때라도 철군선언만 한다면 미국은 세계 여론 때문에 이라크를 공격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후세인은 케야르 총장과의 협상이 결렬되고 철군시한이 지나더라도 최대한 EC나 아랍국 등 제3자를 끌어 들여 협상을 계속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협상이 실패하고 미국의 공격이 가시화된다면 후세인은 그때서야 철군의사를 밝히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라크가 15일이 지난 직후 철군의사를 발표할 것이라는 뉴욕 타임스지의 보도는 매우 개연성이 높은 것이며 다만 그 시기는 더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후세인은 철군의사를 밝히더라도 일부 병력만 철수하거나 혹은 쿠웨이트로 북부지역으로만 철수시킨 뒤 완전 철군조건으로 계속 협상을 시도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럴 경우 미국도 페만에 파견된 병력을 함께 철수시켜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페만사태에 개입한 미국의 깊은 속셈은 이라크의 위협을 내세워 중동지역에 처음으로 미국 영구 주둔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사태는 더욱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후세인이 이번 사태를 전쟁보다는 평화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갖고 있음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다만 문제는 후세인이 정세흐름을 일방적으로 오판,결정적 시기에 그의 카드를 내놓지 않을 경우 페만사태는 일순간에 전쟁으로 변할 위험성이 높다는 점이다. 또 서방이 이스라엘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협상을 후세인과 맺게 된다면 이를 저지하려는 이스라엘의 행동이 새로운 전쟁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결국 후세인이 감춘 카드가 페만사태의 화전을 결정하겠지만 그 카드가 언제 나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배정근 기자>배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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