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전 초읽기… 남은 건 「중재급전」뿐/양측 입장 초강경… 간격만 확인/케야르 「불보복」 협상결과 주목페르시아만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최후의 담판」으로 일컬어지던 베이커 미 국무와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간의 제네바회담이 일단 결렬됨으로써 전면전을 향한 페만위기는 또다시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베이커 장관은 회담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이 회담장에서 보여준 태도는 전면적이고도 단호한 거부이며 완전한 퇴짜였다』고 해 회담결렬의 책임이 이라크 쪽에 있음을 분명히했다.
무겁고 침통한 표정의 베이커는 사태발발 5개월여 만에 첫 마주한 아지즈에게 유엔이 결의한 15일의 최종 시한안에 쿠웨이트로부터 무조건 철군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라크는 이 같은 국제사회의 반응을 오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베이커는 이번 회담의 성과라면 이라크로부터 오는 12일 바그다드 주재 미 외교관 5명의 안전철수를 확답받은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즉 결전을 앞둔 제스처를 써 보임으로써 이라크가 미국측의 요구에 따르지 않을 경우 무력에 의한 강제집행을 할 것임을 재차 분명히한 셈이다.
베이커에 이어 있은 아지즈의 회담결렬 해명 역시 단호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간의 지리·역사적 연계성을 강조하면서 팔레스타인 문제 등의 해결없이는 이 지역의 평화·안정은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이어 「전혀 먹히지 않는 제안」만 한 미국의 요구를 일축하고 『만약 미국이 공격할 경우 이라크는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침착한 어조로 다짐했다.
처음부터 서로의 강경한 입장이 맞서 한 점의 접점도 기대키 어려웠던 이번 회담은 양국이 서로의 간격만을 확인한 채 끝맺고 말았다.
이에 대해 회담을 지켜본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아지즈가 부시 미 대통령의 친서를 거부한 사실과 관련,『이라크측이 회담의 의제를 자신들의 조건으로만 국한시키려 했던 것』이라고 분석하고 『그들도 미국처럼 만전의 대비가 돼 있음을 강력 표명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사태발발 이후 한 치의 양보도 없었던 양측이 구태여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돌연 타협적 자세를 취할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희박했다. 말을 바꾸면 양국이 표면상 강경입장을 보이지 않으면 어느 한 쪽의 굴욕적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을 통해 양측이 대외적으로 공통되게 내보인 것은 모두 다 인류의 재앙을 초래할 전쟁을 원치 않았다는 점이다. 아지즈 장관은 이라크가 공격받으면 이스라엘이 첫 공격목표라는 점을 분명히했다. 역으로 이 말은 군사전문가들이 「최후의 심판」이라 부르는 이스라엘 개입의 버튼을 누르지 말라는 경고의 표현이다.
미국은 「전쟁불가피론」을 겉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하비에르·페레스·데·케야르 유엔사무총장에게 바그다드를 방문하도록 요청한 사실에서 보듯 전쟁방지의 노력을 끝까지 시도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미국측이 제시한 베이커의 바그다드방문 시효가 지난 3일로 끝났다고 선언한 마당에 「체면」 때문에 케야르를 내세워서라도 사태의 「막판뒤집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반대해석도 가능하다.
개전을 굳히고 있는 미국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평화적 노력에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에서 유엔이 중립적 중재자가 아닌 12개의 대이라크제재 결의를 통한 「응징자」의 위치이기 때문에 케야르가 바그다드에서 후세인과 할 수 있는 협상의 폭은 극히 제한돼 있다고 관측한다. 『그가 바그다드를 떠나자마자 곧 총성이 울릴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국제적 지위와 부시 대통령이 바로 이번 회담을 제의한 4일 캠프데이비드 산장에서 장시간 그와 밀담을 가졌던 사실을 상기해 볼 때 그의 바그다드행이 마지막 돌파구를 열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 또한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바그다드에 도착하는 12일은 이라크가 베이커의 교환방문을 요청한 바로 그날이라는 데 더욱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유엔사무총장인 케야르가 제시할 수 있는 「선물」은 후세인이 철군하면 유엔의 불침보장을 비롯한 대이라크 경제제재의 해제를 보장하는 안이다. 후세인의 완전 제거를 위해 사태 이후에도 지속적 경제제재를 주장해온 부시로서는 대놓고 제의할 수 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이는 정권안정을 꾀해야 하는 후세인으로서는 철군의 전제조건 중 하나이다.<제네바=김영환 특파원>제네바=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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