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 대한 한가닥 기대를 유보해뒀던 것은 사실이지만,미국·이라크 외무장관회담이 어떤 합의를 이룰 것으로 기대한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9일 6시간30분에 걸친 제네바회담이 「결렬」로 끝나면서 세계는 또다시 파국의 검은 그림자가 한발 다가서는 불길한 느낌을 실감하고 있다.제네바회담 직후 양쪽에서 나온 발표문은 양쪽 모두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 재확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네바회담의 결렬이 바로 파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지금 이 시점에서 세계가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못박은 「1월15일」의 마감날짜가 바로 전쟁날짜는 아니라고 밝혔었다.
따라서 세계는 적어도 나흘 또는 그 이상의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다. 그것이 딱 잘라 며칠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유엔의 케야르 사무총장이나 프랑스나 유럽공동체(EC)의 중재노력 쪽으로 다음 절차의 깃발이 넘겨진 형편이다.
표면상 미국과 이라크가 양보와 타협을 거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협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지금의 쟁점은 「무조건 철수」와 「연계협상」의 원칙적인 대립에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지난 10월 유엔총회연설에서 쿠웨이트사태 이전에 이미 미국은 중동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제안을 내놨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이 거부하는 것은 중동문제의 정치적 해결이 아니라 쿠웨이트 위기와의 「연계협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으로서도 전쟁은 바로 파멸을 뜻한다는 것을 지금은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됐을 것이다.
국제적 위기는 「실리」와 마찬가지로 명분과 체면이 걸린 싸움의 결과이다. 후세인의 무모한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이번 위기도 마찬가지다. 그 동안 EC권과 아랍권에서 시도된 중재·막후협상의 경과로 볼 때 체면과 명분을 빼놓고 본다면 미국·이라크가 타협할 수 있는 길은 좁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탈냉전시대 국제질서의 선례가 된다는 관점에서,그리고 후세인으로서는 정권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뜻에서 체면과 명분이 한 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 있다. 설혹 타협과 양보로 해결된다 하더라도 침략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분명한 교훈을 확립하는 선에서 해결돼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 전제 위에서 케야르 총장이나 EC권의 중재활동에 기대를 걸어 봄직하다.
후세인 대통령은 「엄청난 유혈」의 협박으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 미국으로서도 침략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큰 원칙만 선다면,그것을 「실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어쨌든 탈냉전시대 2류 또는 3류 군사강국과 집단안보라는 새로운 문제는 세계가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이번 위기의 해결에는 힘든 과정이 요구되고 있다. 유혈보다는 협상에 의한 해결을 바라는 소리가 크긴 하지만,전쟁 가능성이 없이 타협이 있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길지 않은 남은 시간을 평화를 위해 선용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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