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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백만명의 「요행수」/곽수일 서울대 경영대 교수(경제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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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백만명의 「요행수」/곽수일 서울대 경영대 교수(경제진단)

입력
1991.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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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복권 사행심을 부추기다니…어느 중소기업인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어릴 적에 집안이 가난하여 고생해가며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겨우 작은 기업이나마 하나 운영하게 되어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니 이제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자식들이 자기가 어렸을 때처럼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고 그저 편안한 생활만을 추구하다보니 대학조차도 들어가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아버지 사업이 부도났다고 거짓말하여 다시 셋방이라도 옮겨가 살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다. 그러면 아이들도 다시 정신차려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것이 단순히 어느 한 집안의 걱정거리라기보다는 최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공통의 고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지난 몇 년 사이에 우리 경제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다보니 어느 사이엔지 우리 사회에 과거와 같이 열심히 일하려는 분위기가 없어진 것 같고 오히려 이제는 일은 적당히 하고 여가생활을 즐기려는 풍조가 팽배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변화는 단순히 경제적 발전으로 우리 생활이 과거보다 풍족하여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우리보다 선진국인 스위스나 일본 독일 등의 국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들 국민들은 국민소득이 1만5천불을 넘어서도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근로의욕의 감퇴라는 현상의 원인을 단순히 경제적 이유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 사회에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남과 같이 살 수 있고,또 운이라도 좋으면 쉽게 남보다 더 잘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퍼지게 되었다면,이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문제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몇 가지 사회제도가 이미 우리 주위에 굳게 자리잡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요사이 매주 어디에서 언제든지 사볼 수 있는 복권이라 하겠다.

오늘날 우리가 별 생각없이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복권제도를 보자. 누구든지 5백원만 있으면 한 장을 사서 즉석에서 그 결과를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운 좋으면 5백원만 내고서 20만배의 보상인 1억원을 받을 수도 있으며,그러니 적당히 일하여 받은 돈으로 복권이나 사서 요행을 바라게 되고,혹 당첨이라도 되면 횡재이고 떨어지면 남은 재수있는데 나만 운이 나쁘다고 치부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복권의 발행을 보면 주택복권 추첨식이 매주 3백60만매,즉석식이 격월로 2천만매,엑스포복권이 월 6백만매,체육복권이 월 5백만매에 이르고 있는데,이는 매주 평균하여 약 9백만매가 발행되는 셈이다. 즉 매주 연인원 9백만명이 일하지 않고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 속에서 5백원을 내고 재수를 겨루는 복권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여 보면 약 45억원이라는 돈이 불로소득을 위하여 바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국민의 약 5분의1이 매주 복권을 사면서 요행을 바라고 있으니 열심히 일할 마음이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국가가 경영하는 TV에서 매주 복권 추첨을 위하여 노래하고 춤추며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게 되니 그저 운만 좋으면 단 한 번에 잘살 수도 있는데 과연 누가 땀 흘려 열심히 일할 생각이 나겠는가?

물론 복권이 당첨되면 그 이상 좋을 수가 없겠지만 과연 매년 몇 명이나 복권에 당첨되는가를 계산해보라. 불로소득의 요행만을 바라는 복권인생이 결국 가난의 구덩이로 빠지게 되듯이 우리 경제도 복권경제가 되어 요행이나 바라고 제대로 생산을 못하게 되면 종국에는 경제위기라는 파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도 이제는 복권에 의한 모금으로 무슨 사업을 한다는 생각을 버릴 때가 된 것 같다. 그래도 올림픽복권이 있었기에 올림픽이 성공할 수 있었고,주택복권이 있었기에 주택난 해소에 일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성공한 올림픽,그렇게 지어진 주택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준 득실을 이제는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어느 기업인이 거짓으로라도 파산을 선고하고 셋방으로 이사하여 자식들의 의식을 깨우치고 싶다고 한 것이나,우리 경제가 다시 어려워져야 국민들이 예전같이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그저 한번 듣고 넘길 일만은 아니다.

만약 이런 사회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복권인생의 요행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에 대해 당연히 대책을 강구하여야겠다. 어느 선진국이든 열심히 일하는 국민을 가진 나라에서 우리처럼 정부가 앞장서서 복권인생을 조장하는 국가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하겠다.

신미년 양의 해를 맞이하면서 「올 한 해는 일확천금의 복권인생보다는 노력한 만큼의 대가에 만족하는 사회,또 요행보다는 예전의 근면·성실성으로 발전을 꾀하는 건전한 경제가 되었으면」하고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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