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담판」 앞두고 입장차 뚜렷/“도덕적 투쟁” 개전불사로 일관 미/실리 엇갈려 「평화해결」 강조 유럽/“극적타협 없을땐 대이라크 동맹 와해위기” 관측/철군시한 D6일미·이라크 외무장관의 「제네바 담판」을 계기로 페르시아만사태 대응을 둘러싼 미 영 양국과 유럽대륙국가들간의 엇갈린 입장과 이해차이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만약 제네바 담판에서 결정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심각한 갈등요소를 덮어둔 채 유지돼오던 대이라크 공동전선이 와해위기에 처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제2의 십자군 원정」으로까지 불리는 대이라크 공동전선에 균열기미가 처음 드러난 것은 「제네바 담판」을 유도했다고 할 수 있는 EC의 독자적인 대이라크협상 움직임이었다.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한 이 협상 움직임이 있자 미국은 황급히 강경자세에서 다소 후퇴,「제네바 담판」 제의를 내놓아 막바지 외교협상의 주도권을 되찾았다.
미영과 유럽대륙간의 「균열」은 제네바회담의 향방을 예측하는 시각차이에서도 확인된다. 미영 양국 정부는 이 회담이 결코 「협상」이 아니며 「최종 의사 확인」이라는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영 언론들도 이에 따라 「30일 공격설」 등 개전위기가 상존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독일 등 유럽 쪽은 관변과 언론 모두 평화적 해결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미·이라크간의 비밀합의설 보도가 난무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겐셔 독일 외무장관과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모두 사태해결 후의 중동문제 국제회의를 거론,사실상 개전가능성을 배제했다. 이는 「개전카드」를 최대의 협상무기로 삼고 있는 미국의 발목을 잡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페만사업의 동반자」로 지칭되는 영국을 제외한 유럽국가들이 이처럼 결정적 시기에 미국에 등을 돌리는 것은 처음부터 예상되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서유럽 EC국가들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직후 유엔에 앞서 대이라크 경제제재를 단행하고,터키 요르단 이집트 등 주변피해국에 대한 긴급원조를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대이라크 무력 제재준비에는 처음부터 소극적으로 참여했을 뿐이다. 미국은 당초 침략자를 응징하고 세계 석유시장의 안정을 지킨다는 명분에서 출발,최근에는 『2차대전 이래 최대의 도덕적 투쟁』이란 구호를 내걸고 있다.
미국의 최대우방 영국은 전략적 공동보조를 취해온 관행 외에도 쿠웨이트를 과거 보호령으로 두었던 역사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유럽대륙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십자군이나 스페인 내전개입 등과 같은 「도덕적 전쟁」을 감행할 시대상황이 아니라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는 미영 양국 군이 모병제에 의한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데 반해 유럽대륙국가 모두가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사실도 중요 고려사항으로 지적된다.
역사적으로 모두 실패한 「도덕적 전쟁」에 장병들을 내몰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개별국가들의 이해관계에 있어서도 페만에서의 무력개입과 긴장고조는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먼저 독일은 미국의 무력시위에 의한 긴장고조가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독일 통일과 소·동구재건 등 당면한 유럽의 최대 과제에 유럽이 전력을 쏟는 것을 저해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최근 독일은 터키에 전투기를 파견했으나 이는 실전 가능성이 없는 파병을 통해 통일독일의 위상을 높이려는 계산인 것으로 분석된다.
미·영에 이어 많은 규모의 무력을 페만에 파견하고 있는 프랑스도 실제로는 모든 병력을 사우디대륙 깊숙히 배치한 채 독자작전권을 고수,실전 참가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돼 왔다.
그리고 EC의 대이라크 독자협상 움직임을 선도,여론의 반대를 무릅쓴 파병이 「중동협상 참석 티켓확보용」이란 분석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이밖에 소수의 해군함정 등을 파견한 벨기에,네덜란드,덴마크 등 유럽소국들도 페만사태 해결에 의무를 다했다는 명분과 사후발언권 확보에 목적이 있을 뿐이다.
「제네바 담판」을 앞두고 강경파 영국의 메이저 총리는 쿠웨이트 망명지도부를 방문,『사태해결 후 쿠웨이트 재건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메이저의 페만 현지방문의 공식목적은 현지 파견군 태세 점검이라고 발표됐으나,결국 영국도 「도덕전쟁」보다는 실리확보에 분주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십자군도 명분만 「기독교 수호」였을 뿐 실제는 각국의 이해를 노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원정이 실패로 끝난 뒤 각국은 전리품을 놓고 다퉜었다.
미국이 주도한 「제2의 십자군 원정」은 전쟁도 시작하기 전부터 각국의 이해에 따른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제 시간이 지나면 그 「도덕성」에 대한 논란이 시작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베를린=강병태 특파원>베를린=강병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