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에 있은 노태우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 내용은 한마디로 말해 집권 후반기를 맞은 현정권의 국정방향과 통치지표를 밝힌 것으로서 새로운 정책의 제시에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정책의 마무리작업에 역점을 두겠다는 정부의 의사를 분명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새로운 국정소재의 제시가 없는 대신 지금까지 공약한 사항들을 결실되도록 힘씀으로써 경제적·사회적 안정을 기하는 데 충실하겠다는,말하자면 안정위주·안전위주의 정책추진의사를 강조한 내용이다.노 대통령이 제시한 원칙론적인 정책구현방향에 대해 이론을 달거나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줄로 안다. 그만큼 정치문제에 대해서나 경제·사회 문제에 대한 그의 방향설정은 흠잡을 데 없이 정리되어 있으며 거의 모든 것이 빠짐없이 열거되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잘 정리되어 있고 빠진 것 없이 모든 게 열거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원칙론적인 것의 나열에 그쳐 구체적 방안제시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고 하겠다.
지방의회선거를 깨끗하고 공명하게 치러야 한다는 말이나,야와의 대화문호를 개방하겠다는 말은 우리들 누구나가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며 또 진심으로 바라는 내용이지만 노 대통령은 어떤 방법으로 선거를 깨끗하고 공명하고 치러낼 것이며 야와의 국정책임분담방법으로서 어떠한 협력방안을 구상하고 있는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경제문제만 하더라도 우리 경제의 구조를 왜곡해온 부동산투기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늦추지 않을 것이며,비생산적인 서비스산업의 팽창을 억제하고 농업의 구조조정에 과감한 투자를 하겠다는 방향 등이 전혀 나무랄 여지가 없는 옳은 방향설정임에 틀림없다. 건전한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각종 비합리적 규제를 풀고 부조리를 없애겠다는 말도 옳은 말이며,강한 의지로써 물가안정에 최선을 기울여 물가상승을 한자리 수내에서 억제토록 하겠다는 것도 지당한 방향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정부의 정책의지가 벌써 오래전부터 몇 차례나 강조되어 왔으면서도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고 그 결과 정부의 신뢰성에 대한 의심이 국민간에 갈수록 더 커져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느낌이 든다.
민생치안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지만 석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강력사범은 여전히 발호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 강력범이 9% 줄어드는 등 민생치안부문이 호전되고 있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으나 솔직히 말해서 국민들의 불안은 전쟁선포 전보다 오히려 더 심해졌으며 길거리를 마음놓고 다닐 수 없게 된 치안부재의 도도 더 악화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런 저런 상황들을 종합해서 판단할 때 노 대통령이 제시한 내치처방은 좀 지나치게 안이한 현실진단과 그에 입각한 낙관론이 중심을 이루어 마련되어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모든 경제주체가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정부도 노력하겠지만 정부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국민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솔직히 호소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우리는 이러한 정부의 솔직성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정부의 당부가 없다고 하더라도 국민 모두가 우리 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일심 단결해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임을 강조하고 싶다.
국민들이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과는 별도로 정부와 노 대통령은 현재의 우리 사회의 흐름이 진정 부동산투기가 진정되고 공직자기강이 많이 잡혔으며 국민이 안심할 수 있을 만큼 노사관계가 안정되고 치안이 호전되고 물가가 한자리 수에 잡힌 상태라고 판단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봐 주기 바란다. 정부가 정부시책의 효과를 정당하게 평가할 때 비로소 모든 경제주체들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그것이 정부를 신뢰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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