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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1.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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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국회 때 일이다. 1월초 국회 예결위의 여야 간사 의원들이 영·불·독·이 등 유럽 각국의 국회예산 심의방식과 예산 회계제도를 시찰·연구하기 위해 출장 길에 나섰다. 이들은 출발 전 기자들에게 각국의 국회의장단,여야 총무 및 예결위원장과의 면담 일정을 밝혀 자신들의 출장이 매우 뜻깊은 활동이 될 것을 은근히 과시했다. ◆그러나 현지에 도착해 보니 국회의사당은 문이 잠겨있었고 의원은 물론 의장단 등 간부들도 지역구에 내려갔거나 휴가로 자리를 비웠다. 웅장한 의사당에는 수위와 일부 사무처 직원만이 근무하고 있었다. 결국 전문위원 한 명 만나지 못했지만 의원들의 표정엔 실망의 빛이 없었다. 이미 이들은 서울을 떠나기 전 현지 공관들로부터 「면담불가」라는 귀띔을 받아 그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찰단은 현지의 한국특파원들에겐 일체 비밀로 할 것을 공관에 엄명을 내린 뒤 골프 스키 쇼핑과 관광으로 외유를 만끽했다. 구미 각국은 행정부나 의회나 국가간의 화급한 중요사안 외에는 12월은 한해의 마무리와 휴가로,1월은 한해의 시동준비 관계로 가급적 외빈을 받지 않는 게 관례로 되어 있다. ◆새해 들어 김포공항에는 매일 5∼10여 명의 여야 의원들이 빚쟁이가 야반도주 하듯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출국하고 있다는 소식이다(한국일보 5일자 보도). 버젓이 국비로,그것도 의원외교와 시찰명목으로 떠나면서도 국회사무처나 지구당 간부들에게도 알리지 않을 뿐 아니라 일부 의원들은 공항당국에 대해 출국자 명단에서 빼달라고 강청까지 하고 있다는 얘기에는 어처구니가 없다. 특히 일부 의원들은 부인까지 동반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달중에 떠났거나 곧 나갈 의원들은 운영 예결 재무 외무통일 경과 등 각 상임위와 12개 친선협회 등 70∼80여 명으로 추산된다. 정초­1월중의 의원외교활동이 실제는 거의 실효성이 없는 즐기는 나들이에 불과하다는 것은 외무부나 국회사무처,그리고 의원들 사이에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비 대폭인상이 봄 임금협상의 악재로 등장할 조짐인데 자숙할 생각은 없이 집단외유를 결행하는 선량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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