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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 조견표/임철순 사회부 차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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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 조견표/임철순 사회부 차장(메아리)

입력
1991.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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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서울에 와 있는 프랑스 신부가 하도 서울살이가 불편해 차를 사서 몰고 다니게 됐다.어느 날 이 신부의 옆자리에 타고 동행하던 수녀는 빨간불인데도 택시가 길을 건너가자 신부가 『1번』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신부는 조금 더 가다가 옆차선에서 갑자기 밀고 들어온 승용차를 향해 『2번』 하고 소리를 질렀다.

궁금해진 수녀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자 신부는 운전선 쪽의 문에 붙여둔 종이를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1번 나쁜놈,2번 ×××,3번 죽어라」라고 씌어 있었다. 차를 몰고 다니다보니 화나는 일이 많은데 상스럽게 욕을 할 수도 없고 해서 이런 「욕설조견표」를 붙이고 다니며 숫자로나마 욕을 하는 것이었다. 수녀는 고향말로 욕을 퍼부어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때가 많을텐데 외국어로,그것도 숫자로 화를 풀어야 하는 신부의 고통을 알 것 같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는 교차로에서 신호를 위반한 채 쏜살같이 달려온 택시 때문에 하마터면 정면 충돌할 뻔한 일이 생겼다. 너무 놀라 얼굴이 하얘진 신부는 『3버언』하고 외쳤다. 그러자 옆에 있던 수녀가 『아녜요. 1번부터 3번까지 다예요』히고 소리쳤다는 것이다.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욕을 한다. 과속을 일삼고 차선이 없는 것처럼 거리를 휘젓고 다니거나 빈틈만 보이면 파고들어와 길을 온통 뒤엉키게 만드는 차들이 많기 때문이다.

차선을 바꾸려고 깜빡이를 켜면 천천히 오던 차가 무슨 심술인지 속력을 높여 한사코 길을 내주지 않는 일도 잦다. 요즘처럼 눈이 많이 내려 노면이 얼어 붙거나 미끄러운 때에는 욕할 일이 더 늘어난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들어온 운전자는 미안한 듯 뒤 차의 운전자에게 손을 한 번 번쩍 든다. 그러나 대부분 진심이 담기지 않은 제스처이며 약삭빠른 추월요령일 뿐이다. 그때 뭐라고 했다가는 『미안하다고 했잖느냐』는 시비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또 도로의 한복판까지 나와 택시를 잡으려고 해 운전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거나 차도를 유유히 횡단하면서 경적을 울리면 적의에 가득찬 눈초리로 보는 보행자들이 많다. 밤에는 택시가 아닌 줄 알면서도 앞을 막고 『좀 태워줘』 하고 시비를 걸어오는 건주정꾼들도 있다.

모두가 악에 받쳐 있다. 그래서 욕이 난무하고 뒷좌석의 어린아이들까지 욕을 해 핸들을 잡은 아버지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가 생긴다.

욕을 참으면 오히려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말이 있기는 하다. 적당히 욕을 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안전운전에 좋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역시 욕은 하지 않은 것이 좋고 가장 좋은 것은 서로가 욕을 퍼부을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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