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입력
1991.01.07 00:00
0 0

노일전쟁은 따지고 보면 일제의 「대륙정책」과 제정 러시아의 「남하정책」의 충돌이었다. 러시아와 일본의 팽창정책의 교차로에 있던 한반도와 만주는 두 제국의 각축의 대상으로 흥정거리가 됐다. 한반도는 노일전쟁이 일어난지 21개월 만에 을사강제조약으로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1904년 2월8일 일본의 연합함대가 의순항 러시아함대를 기습공격,노일전쟁은 발발했다. 9년 전 한반도에서 청군을 몰아낸 일본군은 영국을 등에 업고 러시아를 몰아내기 위한 도박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의 발틱함대는 극동의 제해권을 확보하기 위해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 1905년 5월27일 거제도 앞바다에 나타났다. 그 당시 일본 해군대장 도고·헤이하치로(동향평팔랑) 제독은 전함 42척으로 마카로후 사령관이 이끄는 발틱함대를 급습,전함 37척을 전멸시켰다. 도고가 러시아의 무적 발틱함대를 궤멸시킴으로써 노일전쟁을 승리로 이끌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래서 일본은 의순요새를 함락시킨 노일전쟁의 영웅 노기·마레스케(급목희전)와 함께 도고의 신사를 지어 제사까지 지내고 있다. 말하자면 명치유신의 원훈으로 받들어진 셈이다. 그러나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고 민주화가 이룩됨에 따라 도고는 군국주의의 상징적 인물이라는 이유로 일본 교과서에서 사라지게 됐었다. ◆외신에 의하면 이 도고 제독의 이름이 92년 4월부터 사용되는 소학교 교과서에 오르게 됐다는 것이다. 46년 만의 도고의 교과서 등장은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의 각료참배와 함께 군사대국화로 치닫게 되는 복고주의의 중요조짐으로 여겨진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