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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을 모른다(어린이를 강하게 키우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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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을 모른다(어린이를 강하게 키우자:3)

입력
1991.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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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안 먹겠다” 떼쓰면 속수무책/교육무기 “말 안 들으면 굶기겠다”는 옛말/집에 오면 엄마보다 냉장고부터/패스트푸드산업 번창/김치·된장은 손도 안대얼마 전까지도 부모들은 『말을 안 들으면 굶기겠다』는 말을 자식을 가르치는 유효한 「무기」로 쳐왔다. 그 말은 굶주림의 비참함을 겪어서 알거나 늘 보면서 살아온 세대가 생각해낸 가정교육장치였다.

그러나 이제는 무기를 쥔 사람이 바뀌었다. 지금의 많은 부모들은 물건을 사달라거나 돈을 달라고 떼쓰면서 『안 해주면 밥 안 먹을거야』하는 아이들의 엄포에 당혹해 하고 있다.

의사관철수단으로 식사를 무기화한 자녀들과 「식사전쟁」을 치러보지 않은 가정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냉장고를 연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늘 채워놓지 않으면 안 된다. 냉장고가 엄마인 것 같다.

아이들은 고추장 대신 케첩,김치나 장아찌 대신 소시지,햄,햄버거와 피자파이,된장 대신 1회용 수프를 먹는다.

그들은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다. 물론 이같은 풍요의 한 켠에 있는 결식아동과 소년소녀가장의 굶주림을 잊을 수는 없지만 대체로 지금 아이들은 굶주림에서 해방됐다.

남편이 지방에서 근무하는 정 모씨(39·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아파트)는 요즘 컴퓨터를 사달라며 단식농성에 들어간 막내아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이에게 굴복하면 결국 이기주의를 가르치고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준다는 생각에서 버티고는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전후의 못 먹던 시절에 자라난 정씨는 『지금도 어린시절의 하늘이 노랗던 배고픔을 생각하면 어떤 역경도 헤쳐나갈 수 있다』며 『우리 아이들이 그런 고통없이 자라나는 것은 분명 은혜로운 일이지만 풍요 속에 싹트는 나약함과 물질위주의 사고방식이 문제』라고 말한다.

음식투정을 잘하는 아들(8) 때문에 식사 때마다 곤욕을 치르는 김 모씨(34·여)는 식탁의 유리 밑에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거지마을 꽃동네의 구호를 끼워놓고 아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김씨의 아들은 아직 어머니의 교육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배고픔의 철학」을 익히지 못한 채 성장하는 데 대한 1차적 책임은 물론 부모에게 있다.

먹고싶어 하는 대로 다 사주는 부모의 심리에는 『나는 굶주렸지만 내 자식만은 배 곯지 않게 키우겠다』는 의식이 잠재해 있다. 그런 생각은 자장면값을 주고 외출하면서 어머니의 역할을 다했다고 믿거나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자책감을 값비싼 외식으로 얼버무리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회사원 박 모씨(40·서울 강동구 천호동)는 지지난해 연말 회사동료들과 고아원을 방문한 이후 웬만하면 외식을 삼가고 가족과 함께 식사하면서 자녀들에게 식사의 고마움을 가르치고 있다. 이번 어린이날에 아이들과 함께 외식을 아낀 돈으로 고아원을 찾아갈 계획인 박씨는 아이들도 아버지의 말을 따라 돈을 저축하는 것이 대견스럽다고 한다.

가족과의 식사가 줄어들면 부모와 자식간에 애정,대화기회가 부족해지고 아이들도 식사의 기초예법을 모르게 된다. 식생활이 단순한 영양섭취행위가 아니라 인격형성에도 기여하는 문화양식이라는 점에서 살펴보면 협동과 봉사를 모르는 어린이들은 바로 식탁에서부터 양산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세태 속에서 어린이를 겨냥한 각종 패스트푸드점은 시장규모 3천억원의 거대산업으로 번창해가고 있으며 어린이들의 입맛까지 서구화시켜 세대간의 「식사갈등」을 부추긴다.

딸이 유치원생인 이 모씨(34·여·경기 광명시 철산아파트)는 『딸아이가 김치·고추장을 못 먹는 데다 된장냄새를 싫어해 상을 따로 차려주거나 국을 끓일 때도 별도로 조리해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맥도널드 햄버거 압구정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김 모양(22)은 『방과 후 2천원이 넘는 햄버거 군것질을 하고 집에 가는 국민학생들이 하루 70여 명』이라고 말했다.

어린이 전용식당도 등장했다. 자극성이 낮은 재료로 만든 「주니어 메뉴」를 갖춘 T,C 등 어린이식당 체인점은 어린이고객을 끌려고 장난감까지 비치하고 있다.

또 엄마의 정성이 담긴 도시락을 싸주기보다 이런 식당에서 만든 간편식을 학교로 배달하게 하는 주부도 늘어나고 있다.

어린이들은 일찍부터 외식을 통해 과소비를 배우거나 과다한 영양섭취나 편식으로 비만 당뇨병 고혈압 등 성인병까지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교육부가 앞으로 초등교육에서 기본생활습관 교육과 함께 학교급식 확대에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려는 이유는 식생활의 중요성을 인식,어린이들의 비뚤어진 식생활 행태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YWCA 어린이부의 박영숙 간사는 『어린이의 식생활을 성장발육과 영양섭취차원에서만 생각하면 안 된다』면서 『식생활은 먹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깨닫고 올바른 사회관과 건전한 인격을 갖추는 중요한 교육과정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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