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라크 중간처신 탈피… 국제여론 수용/「민간파견」 구성어려워 군으로/개전땐 본격파병 고리 가능성페르시아만지역에 군 의료진을 파견키로 한 정부의 결정은 복잡한 대내외 변수에 의해 취해진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페르시아만사태가 발생한 이후 우리나라는 서방과의 공동보조와 이라크와의 양자적 이해관계 사이에서 계속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입장에 처해있었다. 유엔결의에 따라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에 동참할 때나 페르시아만 인접국 및 다국적군에 2억2천만달러의 지원을 결정할 때 모두 이라크내의 교민 및 건설공사 등 밀접한 이해관계를 고려하며 조심스런 처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였다.
이번 군의료진 파견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고심 끝에 결정됐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이라크와의 양자적 이해관계보다는 국내 여론이 더 큰 변수로 작용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군의료진 파견문제는 지난해 우리측이 2억2천만달러의 페르시아만사태 지원금분담을 결정한 이후 미국측에 의해 꾸준히 제기되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미국측은 군이 아닌 단순한 의료진 파견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물론 경제제재 및 지원금 분담에서와 마찬가지로 세계평화유지에 동참한다는 의미와 우리가 1백% 원유수입국으로서 페만사태의 해결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나라의 하나라는 명분이 작용했다.
우리측은 이같은 미측의 요청에 기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그 실천문제를 놓고 상당한 고심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민간인 의료진을 파견할 경우 구성자체가 어려 우리라는 기술적인 문제에 부닥쳤다. 외과 마취과 방사선과 등 전문의는 물론 간호사와 이를 뒷받침할 기술요원 및 행정요원들의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리라는 판단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군 의료진의 파견을 검토했으나 이번에는 국내정치적인 어려움에 봉착했다. 월남전 파병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일반국민들에게 군의료진 파견은 또 한 차례의 해외파병으로 인식되게 마련이고 이는 여권에 정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됐다.
정부는 그러나 미국측의 계속되는 요청을 거부할 경우 국제문제해결에 동참하지 않은 채 이익만 챙긴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데다 페만사태가 해결된 뒤 원유공급질서에 대한 우리측의 발언권이 약화될 것이라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한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이웃나라 일본이 자위대 의료진을 파견키로 하고 자위대병력까지도 파병키 위해 평화협력법안을 상정한 사실에 자극받은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역시 미국측의 의료진 파견요구에 민간의료진 구성을 고려하다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히는 바람에 자위대 의료진파견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본은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금지하는 헌법에 따라 자위대 의료진을 제대시켜 민간인 신분으로 파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같은 배경 아래 군의료진 파견을 검토해왔으나 역시 국민여론을 의식,공식발표를 계속 유보하며 페만사태를 관망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이 유엔 안보리로부터 추인받은 이라크와의 협상시한 1월15일이 다가옴에 따라 미측의 의료진 파견요청은 더욱 강력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말 미국측에 군의료진을 파견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하고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사우디아라비아측과 직접 협의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그러나 군 의료진을 파견하기 위해선 국회동의가 필요하며 우리 임시국회가 오는 24일 부터 열리기 때문에 빨라야 이달말께나 파견할 수 있다는 점을 미국측에 함께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반해 미국측은 오는 15일 직후 전쟁발발 가능성에 대비,가능한한 빨리 파견해줄 것을 요청,파견시기는 다소 유동적이다.
군 의료진의 숫자는 1백∼1백50명 가량이 될 것으로 알려졌는데 군의관 1인당 간호사 기술요원 등 5∼6명이 함께 파견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파견인원은 행정요원까지도 전원 군소속이다.
한편 군 의료진파견은 그 자체보다는 상황진전에 따라 실병력 파견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페만사태가 전쟁으로 치닫는 최악의 경우를 맞을 경우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의 지원분담금 증액 또는 파병요구가 새롭게 등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페만사태 이후와 유엔 등 국제무대에의 진출을 생각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우방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으며 따라서 경제부담보다는 병력파견을 긍정검토하게 될 가능성도 상정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그 동안 미국측이 실병력에 대한 파병요청을 해온 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정부는 또 우리의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병력파견은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파병요청이 있으면 그때 가서 검토한다는 것 또한 정부의 공식적인 태도이다.
동서 탈 냉전의 시대에 돌출변수로 등장한 페만사태는 이제 남의나라 얘기가 아니라 곧바로 우리의 뒷덜미를 잡는 또다른 복병으로 나타난 셈이다.<정광철 기자>정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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