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새 총리,새 내각.그러나 느낌은 별로 새롭지가 않다. 유임된 장관이 많은 탓일까,새로 쓰인 이들이 하나처럼 구면인 탓일까. 젊은 학자총리의 등장도,의외성은 있으나 참신성은 모자란다. 대폭 개각이면서도 분위기가 민심 일신의 효과는 아무래도 미흡하다.
왜 그럴까.
까닭은 여럿이겠으나,그 중의 하나로 개각절차의 구태를 꼽지 않을 수가 없다. 구태의 되풀이 속에서 새로운 맛이 우러나올 까닭이 없는 것이다.
나는 작년 3월 강영훈 총리의 제2기 내각이 발족됐을 때에도 이 문제를 거론했었다(3월24일자 본란). 헌법에 규정된 총리의 임명제청없이 이루어지는 조각이나 개각이 과연 온당한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실행은 오래 있어왔고,이번 개각절차도 그 실행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헌법의 명문을 엄격하게 해석할 때,그 실행이 위헌적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얼핏 생각하면,이 문제는 절차적인 얘기 같지만,사실은 대통령중심제에 의원내각제를 가미한 우리 헌법의 기본구조와 연관된다. 총리는 국회동의를 얻어 임명하며(헌법 제86조) 국무위원(각부 장관)은 총리의 임명제청을 받아 임명하도록 한 것(헌법 제87,94조)은 누구든 한 사람의 전횡은 용납 않는다는 헌법정신에 관계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 규정은,상식적인 어문감각을 가지고 읽어보아도 앞뒤가 너무나 분명하다. 새 총리에 대한 국회동의가 있는 연후라야 총리를 임명할 수가 있으며,총리의 임명제청이 있은 연후라야 각부 장관을 임명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헌법정신은 제쳐두고,겉모양으로나마 이 규정을 존중하는 방도는 어떤 것일까. 우리 헌법의 취지를 수긍하고,헌법의 명문은 반드시 지킨다는 민주정치의 규범 제1조를 존중한다면,적어도 개각절차는 다음과 같아야 옳다.
즉,개각이나 조각이 있을 때,대통령은 새 총리를 지명하고,국회소집을 요구한다(국회소집을 요구해놓고 개회에 맞추어 총리를 지명할 수도 있다). 국회의 임명동의가 나면 총리는 제청권을 행사하여 내각을 구성한다.
내가 생각하기에,이런 모양새는 내각책임제를 소신으로 밝혀온 대통령이나 총리 지명자가 모두 선호할 것도 같은데,이번 개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새 총리는 대통령의 지명발표가 있은 몇 시간 뒤에 임명장을 받고,국회동의 절차를 기다림이 없이 취임했다. 그야말로 구태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 총리를 총리서리라 부른다. 그 자신도 첫 기자실 방문에서 서리호칭을 자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쯤의 「겸양」만으로 우리 헌법의 규정들이 충족됐다고 할 수가 있을까.
헌법 어디를 찾아봐도 총리서리란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편법이요,사실상의 총리 지명자가 있을 뿐인 것이다.
우리 헌정사는 국회동의를 받지 못하거나,받을 겨를도 없이 물러난 총리 지명자의 몇몇 예를 기록하고 있다. 나는 그들이 이른바 총리서리로서 행한 국법행위가 과연 유효한 것이었는지를 의문스럽게 생각한다. 아울러 총리의 임명제청없는 국무위원 임명은 당연 무효라고 주장하는 헌법학계의 유력학설도 귀담아듣는다.
하긴 이같은 논의는,지금의 국회의석 분포에 비추어 공리공론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새 총리 지명자는 국회의 사후동의를 받을 것이 틀림없으니까. 그래서 좋다면 좋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공리공론에 가깝더라도 이 논의에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논의가 드러내는 것은,앞으로의 헌정 운영을 위한 일깨움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첫째는 우리 헌법 현실에서 총리의 지위와 권한이 매우 애매하기 때문에 개각절차에까지 시비가 인다는 것이요,둘째는 지위와 권한이 그렇게 애매해서야 누구가 총리로 되든 얼마나 남다른 일을 할 수가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더구나 개각절차의 구태는 새 내각도 이와 같은 구태를 벗기가 어려우리란 짐작을 낳는다.
이 점은 「분신내각」 「친정내각」이란 말에 잘 드러난다. 임명권자인 대통령 자신도 새 총리는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사람이며,법과 질서의 확립이 그의 임무라고 말해 그런 말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법과 질서라는 이름의 「보수」가 있을 뿐 개혁의 의욕은 별로 없어 보인다.
문제는 임명권자 스스로가 규정한 새 내각의 이런 성격 규정이,새 총리의 특성으로 일컬어지는 「소신」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에 있을 것도 같다. 그의 「소신」은 그가 일찍이 쓴 글에 이렇게 나타난다.
『희망을 몰아주는 것이 정치의 당면과제요,사회적 결속을 이루는 길이다. 그러자면 비전의 제시가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적극통치가 있어야 하고,적극통치를 하자면 타격의 대상이 지속적으로 분명해야 하며 타격의 이행이 공공연해야 한다』(동아일보 83.6.22 「시론」).
그가 말하는 「적극통치」가 어떤 것일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타격」의 대상이 무엇일지도 아직 분명치가 않다. 그래서 아직은 그와 그의 내각을 기대반·불안반인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으나,바라기는 분신에 그치지 않으며 소신에 치우치지도 않으면서,구태를 벗는 새로움이다.
이 당부는 역시 그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입헌민주주의와 산업사회에 알맞은 체질을 갖는 보수란 무엇인가를 서둘러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동 86.6.6).<상임고문·논설위원>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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