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과천경제부처의 새해 시무식 분위기는 왠지 착 가라앉아 보였다.한때 총체적 난국론까지 제기됐던 지난 한 해는 9% 이상의 실질성장을 기록했다. 페만사태 수해 등 예상밖 사태가 잇따라 터지면서 거의 불가능할 것 같던 한자리 수 물가억제도 지수상으론 너끈히 달성했다.
또 망국병처럼 번진 부동산투기 광란을 눌러앉히는 데 일단 성공한 것 같고 금융공황 일보전까지 치달은 증시침체도 위기를 벗어났다는 중론이다.
그럼에도 시무식장에 도열한 직원들의 얼굴엔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자랑스러움이나 닥쳐올 격전에 몸던져 부대끼려는 투지와 정열은 드러나지 않았다.
경제팀장인 이승윤 부총리의 인사말 속에는 경제부처 직원들의 느끼는 이러한 암담함이 배어 있었다.
이 부총리는 『올해의 경제여건은 (총체적 난국이라던) 지난해보다 더 악화될 것이라고 예견하는 사람이 많다』고 걱정했다.
그의 지적대로 우리 경제는 올해 유가상승과 그에 따른 주요교역국의 경기침체,우루과이라운드협상과 미국 등의 통상압력 등 격랑에 시달려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10년 만에 두자리 수를 기록할 공산이 큰 물가,노사관계의 불안정 요소에다 지자제 실시에 따른 민주화비용까지 치러야 한다.
인력 교통 공장부지난과 기술개발 생산성 향상은 애당초 하루아침에 해소될 일들이 아님은 물론이다.
게다가 근로자는 일할 의욕을 잃고 기업가는 제조업을 피해 손쉬운 돈벌이만 궁리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우리 민족성을 들어 『진짜 위기가 발등에 닥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복해낸다』고 낙관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외 상황은 우리 경제에 「용」이냐 「지렁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 근대사에서 신미년의 의미는 각별하다. 1백20년 전 미국의 군함 3척이 함포를 앞세워 강화도를 점령,문호개방을 강요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다.
신미양요의 변란을 맞아 우리 조상들은 무모한 척화비로 맞섰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 후손들의 삶에 멍에를 남겼다.
근로자 기업 가계 등 경제주체와 정부·정치인 등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자신의 사소한 방심이 자칫 또 하나의 척화비를 세우는 망발이 될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올 한 해를 보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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