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약하다/코피만 나도 “죽는다” 법석/회초리엔 밥 안 먹기… 사소한 일 자살까지오늘의 우리 어린이들은 통일 후의 한국을 엮어갈 주역이자 국제화·정보화·개방화 시대를 살아갈 세계시민으로 성장해야 하는 세대이다. 신질서 신문명의 충격 속에서 그들이 부적응과 갈등,인간상실의 시련을 이기며 훌륭한 민주시민으로 자라나 세대간 전통계승의 역할까지 해내도록 도와 주는 것은 기성세대의 몫이며 책임이다. 그러나 요즘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이 상전』이라고 고백한다. 또 『요즘 아이들 기르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식전달 위주의 학교교육과 가정의 과보호 울타리 안에서 어느새 우리의 어린이들은 굳세고 바르게 커나갈 줄 모르게 됐다. 인내와 예절과 협동 봉사 정직 등의 가치를 배우고 실천하기보다 속셈과 피아노 웅변과 컴퓨터에 매달려 있는 「만년어린이」로 자라나고 있다. 한국일보는 21세기를 헤쳐나갈 주역을 강하고 바르게 키우는 일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안겨진 절박한 과제라는 인식에서 91년 새해를 맞아 모든 기성세대와 함께 요즘 어린이들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주>편집자주>
서울대 사대부속국교 김병렬 교장(59)은 3년 전 강남지역 아파트단지의 국민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때 실시했던 어린이 기초검사의 결과를 자주 인용,요즘 우리 어린이와 학부모들에 대해 개탄하고 있다. 지·덕·체의 조화가 학교교육의 본질이라고 믿는 김 교장은 자기 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이 3가지 덕목에 관한 검사를 실시하고 놀랐었다.
평균 학력점수는 93점,인성점수는 38점,체력점수는 37점으로 학력에 비해 인성·체력지수가 형편없이 낮았던 것이다.
그러나 김 교장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검사결과가 아니었다. 학력에 비해 인성(도덕적 실천력)과 체력이 너무 떨어지는 문제점을 논의하기 위해 학부모 회의를 열었더니 참석자들이 한결같이 『공부를 잘 가르쳐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며 검사결과를 반기더라는 것이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을 길러낸 교장」으로 전락해 버린 김 교장은 자신과 학부모,우리나라 초등교육 전반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김 교장은 『우리 사회는 어린이들이 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고 있다』며 『가정의 과잉보호와 지식편중교육을 받으며 아이들이 자라날 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개탄했다.
구랍 11일 부산에서 목매 자살한 국민학교 4학년 남자어린이(10)의 일기는 우리의 아이들이 얼마나 나약하고 폐쇄적으로 커가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살 하루 전에 쓴 일기에는 『나는 엄마가 밉다. 오늘 나는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동생은 안 혼나고 나만 혼났다. 엄마라기보다는 계모라는 게 훨씬 맞다. 내 잘못과 동생 잘못이 반반인데 나만 실컷 맞고 동생은 한 대만 맞았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라고 적혀 있었다.
어린이들은 성적이 떨어졌다고,불량배에게 시달림을 받는다고 쉽게 자살한다.
『요즘 어린이들은 코피만 조금 나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양호실로 달려와 「선생님 저 죽는 게 아니에요」라며 난리법석을 피웁니다』 서울 S국교 양호교사 박 모씨(55)의 말이다.
강남 일대의 국민학교 앞에는 등하교시간만 되면 자가용 승용차가 줄을 잇는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교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가방을 뺏다시피 차에 태운다. 5학년 딸 아이를 둔 강남구 개포동의 주부는 『나쁜 일인줄 알면서도 불량배를 만나면 주라고 비상금을 챙겨주고 있다』며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며 아이들 등하교 때문에 운전을 배우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 독산국교 홍광식 교장은 『요즘 아이들은 성공만 경험하고 실패는 모르고 삽니다. 공부라면 모든 걸 면제해 주는 부모들 탓입니다』라고 말한다. 학교 공중전화에서 아이들이 집에 전화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숙제한 것 어디에 있으니 가져 와』 『우유값 안 가져 왔으니 갖다 달라』는 등 전화통에다 대고 어머니를 친구다루 듯 야단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머니들은 쏜살같이 학교로 달려온다.
이 같은 과보호 속에서 화초처럼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중학생이 되어도 시골 큰집을 혼자 찾아갈 줄 모르는 아이가 많고 물건을 제대로 고르고 살 줄 모르며 청소는 물론 못질도 할 줄 모르거나 대학입시날에도 부모가 고사장까지 데려다 줘야만 하는 나약한 청소년으로 자라난다. 시골아이들도 농사일을 모른다. 학부모들의 반대로 농번기 가정실습주간이 없어진 학교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회초리를 댔다 하면 며칠 동안 밥도 안 먹고 방안에 틀어박혀 시위하기 일쑤다. 놀이터가 부족하고 놀이시설이 단조로운 것도 이유이지만 방구석에서 비디오와 컴퓨터게임 전자오락 장난감에 매달려 바깥세상의 모험과 사회적응력을 배우질 못한다.
지식위주의 초등교육에도 문제가 있다. 지난해부터 국민학교에서의 기본생활습관 교육을 강조하며 장학책자 등을 개발한 정원식 전 문교부 장관은 『핵가족화,한 자녀 갖기,맞벌이 추세의 영향으로 가정교육이 지나치게 과보호로 흐르거나 등한시되는 현상을 학교교육이 시급하게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YMCA 어린이부에서는 84년부터 소년탐험대를 조직,무인도탐험,해양훈련 등을 하고 있는데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지난해 이 탐험대에 가입한 윤 모군(11·서울 Y국 5)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용감해지는 것을 느꼈다』면서 『학교에서도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충재 기자>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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