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북센터 사장 장명호씨/“책 통해 「함께 사는 사회」에 기여”/성금 매달 꼬박꼬박 익명 기탁향락과 과소비지대로 불리는 서울 강남에 월드북센터라는 대형서점이 지난 15일 문을 열었다. 강남구 논현동 17의4 평당 5천만원을 상회하는 금싸라기 땅에 1백억원을 투자해 지은 지상 6층 연건평 7백50여 평의 초현대식 서점은 세밑 출판계의 상쾌한 화제가 됐다.
사람들은 그 비싼 땅에 겨우 서점을 지은 것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서점주 장명호씨가 36세밖에 안 되는 청년사업가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그러나 장씨가 89년 연초부터 한국일보 사회부가 전개해온 불우이웃돕기 캠페인 「함께 사는 사회」의 장기·다액 익명기부자라는 사실을 알면 또 놀라게 될 것이다.
장씨는 89년 5월부터 90년 7월까지 매달 1백만원씩,90년 8월부터는 매달 1백50만원씩 모두 20회에 걸쳐 2천2백50만원을 기탁해온 숨은 독지가였다. 장씨와 함께 매달 꼬박꼬박 온라인계좌(조흥은행 3224025173)로 송금을 해오는 선량한 이웃들의 참여로 「함께 사는 사회」의 성금 적립액은 90년말 현재 6천8백43만7백22원에 이르렀다.
어쩌다 송금하지 못한 경우엔 두 달치를 한꺼번에 보내오는 그들의 선의는 이처럼 차곡차곡 쌓여 「이웃을 늘리자」는 캠페인의 앞길을 밝게 해주고 있다.
성금액의 3분의1 가량을 낸 장씨는 그 동안 부인을 통해 성금을 보내오면서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해 어떤 인물인가 궁금하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기자들이 찾아갈 때마다 장씨는 그대로 돌려보내면서 『좀더 보람있는 일을 하거든 그때가서 생각해 보자』고 말했었다. 그 「보람있는 일」의 첫 번째가 바로 강남에 대형서점을 내는 것이었다.
장씨는 한국일보사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공동 주관하는 「사랑의 쌀 나누기」에도 익명으로 1백만원을 냈으며 9월 수해 때도 수해의연금 1백만원을 익명기탁했다.
그가 젊은 나이에 큰 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가정사정으로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든 덕분. 보성고 고려대 농학과를 졸업한 장씨는 대학 2년 때인 75년 6대 의원이었던 아버지 장치훈씨(민주)가 별세하자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8남매 중 일곱째이지만 어머니를 모시며 여동생과 함께 살 수밖에 없었던 장씨는 약간의 유산으로 가구대리점 음식점 등을 경영했다.
또 기회가 생기면 웨이터 생활을 해보고 전자대리점 배달원도 했던 장씨는 사업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82년부터 호텔업에 뛰어들어 두 호텔의 사장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닥치는 대로 갖가지 직업을 가져본 것은 자기 탐색과정에 불과했고 돈을 벌면서도 그는 늘 허탈하고 공허했다. 무엇을 해보아도 마음에 차는 일이 없었던 그는 자신의 허탈감이 「사회에 대한 떳떳치 못함」 때문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에 대한 기여」를 결심한 그는 향락의 현장에 문화의 혼을 불어넣기로 하고 한창 돈을 벌 수 있는 올림픽 직전에 호텔 하나를 팔아버린 뒤 서점부지를 고른 끝에 일부러 반경 1백m에 카바레가 8개나 되고 술집 음식점이 즐비한 곳을 택했다. 매장시설 현대화 업무전산화 인력의 고급화를 내세우며 서적산업에 뛰어든 그는 대졸 출신 서점종업원을 서점가에선 처음으로 공채하고 모든 업무를 전산화했다.
서점개설을 준비하는 동안 알게 된 「함께 사는 사회」는 그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어둠을 밝히는 등잔불」을 구호로 내건 월드북센터는 문화의 집적물인 책을 통한 첫 사업일 뿐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한 그의 꿈은 끝이 없다.
올해에는 남은 호텔까지 정리해 진정한 의미의 비영리 문화센터를 건립하고 전국 군·구청의 추천을 받아 소년소녀 가장 1백명에게 매달 생활비를 지원해줄 계획이다.
6만종 30여 만 권을 갖춘 서점은 예상대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그는 『돈은 남을 돕는데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며 중요한 것은 마음과 정성』이라면서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약속은 끝까지 지켜가겠다』고 말한다.
31일에도 안양교도소 등 4개 교도소에 전해 달라며 1천5백여 만원어치의 책 4천권을 책장과 함께 법무부에 전달한 그는 『전국민이 책을 많이 읽고 자기 위치에 맞는 가치관을 세우고 정치인이라면 최소한 「목민심서」는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새해 소망을 밝혔다.
장씨는 대학을 졸업한 78년에 결혼한 부인 문선옥씨(34) 윤선(11) 민정양(8) 등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는데 부인 문씨도 남편의 「무모한 사업」과 기발한 계획을 충실하게 돕는 사람이다.
90년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장씨는 신미년 새해엔 더욱 활기차고 바쁘게 활동할 것이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은 오로지 그의 문제이겠지만 우리 사회는 선량하고 믿음직한 이웃을 또 한 명 갖게 됐다. 올해에도 한국일보의 「함께 사는 사회」는 장씨와 같은 이웃들과 함께 돕고 사는 삶을 선도해갈 것이다.<신윤석 기자>신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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