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종식… 세계 「신질서」 주도/미와 군축 진전… 핵위협 제거/독일통일엔 「견인차」로 활약/대한 수교 한반도 평화에도 일익… 개혁에 박차 가할듯세계사에 1990년을 독일통일의 해로 적는다면 독일통일의 계기를 마련해준 인물로는 단연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그 만큼 고르바초프가 국제질서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신사고」 외교정책으로 전세계는 냉전체제에서 신데탕트시대로 변화됐고 그 절대적인 영향으로 금세기 안에는 결코 불가능하리라던 독일통일이 눈깜짝할 사이에 현실이 됐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영향력은 냉전시대의 마지막 유산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까지 미쳐 한소 수교 및 노태우 대통령의 역사적인 소련방문과 이른바 모스크바선언이 발표되기까지에 이르렀다.
세계의 화해구도는 물론 고르바초프 한 사람이 희망한다고 이룩될 수는 없었겠지만 국제질서의 변화하는 추세를 냉철하게 간파한 그의 혜안이 없었다면 세계는 아직도 핵무기 및 체제우위 경쟁으로 빚어질지 모를 전쟁의 위협 속에 놓여 있을지 모른다.
고르바초프의 이같은 외교적 성과는 그가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유럽의 대변혁과 군축 등에서 나타난 가시화된 결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 개인에게는 올해가 무척이나 힘든 한 해였다.
연초부터 불어닥치기 시작한 소연방 각 공화국들의 독립운동과 잇달은 민족분규,이에 따른 유혈사태 등은 연방해체론까지 나올 정도로 악화일로를 걸어왔으며 경제 역시 85년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실시한 이후 최악의 상태에 빠졌다.
정치권에서의 극심한 보혁대결은 국론의 분열을 초래했고 마침내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지우였던 세바르드나제 외무장관까지 사임하는 사태를 빚었으며 모스크바시민 10명 중 7명은 『고르바초프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을 정도가 됐다.
이러한 상황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바로 고르바초프 자신에게서 연유한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없었으면 소련내 각 민족세력의 「발호」도,정치적 대립도,경제난국도 없었을 것이다.
소련은 지난 70여 년 간 공산당 서기장을 중심으로 한 정치국원들의 집단독재체제로 이어져왔었으나 고르바초프의 서기장 취임 이후 급격한 정치다원화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이는 바로 민초들의 목소리가 정치권의 상층부까지 여과없이 전달되게 됐다는 것을 뜻하며 사회주의체제내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종의 무혈혁명으로 간주할 수 있다.
경험도 역사도 없는 민주주의의 길로 들어섰던 소련은 올 들어 「시장경제」라는 또다른 단적 요소로 해 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고르바초프는 따라서 파국을 막는 길은 소연방을 새롭게 결속시키는 새로운 정치개편밖에 없다고 보고 대통령제 채택에 이어 대통령의 행정권 장악 등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헌법 개정안을 3월13일과 지난 27일 폐막된 2차례의 인민대표대회에서 통과시켰다.
고르바초프는 자신이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가 될 생각은 분명 없다고 해도 현 난국을 타개키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있어야 된다고 믿고 있다.
과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비록 「독재적」 힘이라도 이를 적절히 활용하면 「약」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뜻이다.
서방 언론들은 고르바초프의 이런 권한강화가 독재자 또는 슈퍼차르가 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으나 미국 대통령제에서 보듯이 비슷한 권한을 갖고 있는 부시 미 대통령이 결코 독재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독재자는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신의 권력과 영화를 위해 전횡을 일삼는 지도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고르바초프가 애당초 독재에 뜻이 있었다면 공산당의 권력 일당독점 폐기도,시장경제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예 자신을 비판하고 있는 급진개혁파를 일거에 숙청했을 것이며 고 사하로프 박사 등 반체제인사들도 복권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이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대개 그 시대에서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
고르바초프의 지금까지의 업적 역시 현 소련의 어두운 상황에서는 제대로 평가받기 힘들 것이다.
특히 「혜성」처럼 나타나 그 동안 「외치」면에서 걸어온 그의 궤적에 비해 본다면 올 한 해 내정면에서 거둔 그의 승리란 상처투성이로 뒤덮인 것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누구도 속단할 수 없는 소련의 장래가 여전히 그의 어깨에 달려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이장훈 기자>이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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