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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EC서 힘겹게 번돈 일에 “헌납”/대일 무역적자 갈수록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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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EC서 힘겹게 번돈 일에 “헌납”/대일 무역적자 갈수록 심화

입력
1990.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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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차 커 수출부품 전적 의존/5개년 개선 노력도 허사… “구조화” 수렁에/당장 부담 커도 과감한 기술투자등 시급『이러다간 우리나라 산업전체가 일본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 아닐까』

지난 86년 대일 무역수지적자 규모가 54억4천4백만달러에 달했을 때 경제관료들은 왜곡된 무역구조에 의한 우리 경제의 대일 예속을 이같이 우려했다. 정부가 부랴부랴 대일 역조개선 5개년계획을 수립,87년부터 시행하면서 대일 적자는 개선기미를 보였으나 지난해부터 다시 늘어나기 시작,올 들어 11월말 현재 55억8천만달러에 이름으로써 「일본의 하청공장화」의 우려가 다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역조율로 보면 악화 일변도인 것만은 아니다. 지난 80년의 경우 대일 수출규모가 30억달러였는데 수입은 58억달러로 28억달러의 적자를 기록,역조율(역조량을 총 교역량으로 나눈 것)이 31%에 달했으나 올 11월말 현재의 경우 역조율이 19.8%로 낮아졌다.

정부관계자들은 역조율이 낮아진 것을 예로 들어 반드시 비관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80년대 초와는 판이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80년대 초까지는 우리 산업의 기반이 취약,기술과 자본재의 도입을 일본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경제의 규모와 질을 높이기 위해 대일 역조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아직도 많은 분야에서 기술개발과 제품의 품질면에서 일본에 뒤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품목이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경쟁을 하고 있다. 이같은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에 대한 무역역조 규모가 55억8천만달러에 달했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산업구조가 대일 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정부가 경제의 대일 예속을 우려,대일 역조개선 5개년계획을 추진하고 있고 기술 및 자본재의 도입선을 다변화하면서 산업구조조정을 꾀하고 있지만 산업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 될수록 일본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고 따라서 대일 무역역조도 큰 폭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다.

우리 기업들이 아무리 기를 쓰고 수출을 늘려봐야 제품생산에 필요한 기술과 핵심부품,생산장비 등을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와야 하기 때문에 결국 우리나라 기업들은 노임 정도만 얻고 실속은 일본이 챙기는 꼴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의 경우 올해 40억달러 가까이 수출했지만 반도체를 생산하는 설비도입에 38억달러를 썼다. 그런데 이 설비를 모두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다. 반도체를 수출하면 할수록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는 돈이 늘어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수출주종상품이라고 내세우는 자동차·전자·조선·기계류 등도 고가의 핵심부품은 모두 일본에서 도입,우리의 수출증대가 일본 기업에게 앉아서 장사하게 만드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미국이나 EC(유럽공동체) 등 거대한 시장에 대한 수출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들 지역의 각종 수입규제조치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들은 시장개척을 꾀해 올 11월말 현재 미국에서 21억9천만달러,EC에서 1억3천5백만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이렇게 어렵게 번돈을 대일 수입에 다 써버리고도 모자라 32억5천5백만달러를 더 쏟아부었다는 계산이다.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획기적으로 조정되지 않는 한 세계 각국에서 번돈을 일본에 바치는 경제 예속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정부나 기업이 대일 예속을 피하기 위해 다변화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본의 산업기술이 워낙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제3국으로부터의 기술도입으로는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이다. 자연히 기업들은 일본의 기술자본재를 도입할 수밖에 없고 일본이 이미 다 우려먹은 기술이나 설비를 준다해도 마다할 입장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한 산업의 구조조정도 따지고 보면 일본의 기술·시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셈이라 구조적으로 경제 예속을 피할 수밖에 없게 되어가고 있다.

물론 일본의 경쟁상대가 되기 위해선 일본의 앞선 기술을 들여올 수밖에 없겠지만 당장의 실리보다는 부담이 크더라도 일본의 경제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지 않는 한 기술 예속에 이은 경제 예속은 피할 길이 없다.<방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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