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평등」 남아공 탄생 기대/3백년 차별정책 철폐 산파역/정치범 사면·보통선거등 난제/27년만에 백발로 석방… ANC 무장투쟁 종식 개가90년은 이념의 벽을 허물고 냉전종식과 독일통일을 이룬 화합의 한 해였다. 그러나 올 한 해 동안 발생한 국제정치질서의 대변혁에도 불구하고 세계에는 여전히 인류를 대립과 갈등으로 몰고가는 인종과 민족의 장벽이 남아 있다.
남아공의 흑인 지도자 넬슨·만델라(72)의 석방은 이러한 장벽이 얼마나 높고 두꺼운 것인가를 새삼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그 벽이 깨질 수도 있다는 기대와 가능성을 함께 제시한 「90년 2월11일의 사건」이었다.
세계 유일의 인종차별국가인 남아공의 백인 대통령 프레드릭·데클레르크는 이 나라가 3백년 동안 고수해온 아파르트헤이드(인종차별)정책의 5년내 단계적 철폐를 전제로 만델라를 석방했다. 데클레르크가 단행한 이 조치는 어떤 면에선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버금가는 과감한 개혁의 시작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그로 인한 동유럽의 변혁은 유럽의 정치지도를 바꾸어놓았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데올로기라는 상부구조의 변화에 초점이 두어진 것이었다. 소련과 동유럽인들은 과거와 다른 사고체계를 지닌 지도자들을 맞게 됐지만 그들은 결국 한핏줄을 지닌 동족이다.
그러나 남아공 백인들에게 있어 아파르트헤이드의 철폐는 피부색이 다른 이민족의 지배와 최악의 경우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스스로를 「아프리카너」라고 부르며 3백여 년 동안 고향인 유럽과 단절한 채 고유한 언어 문화 관습을 발달시켜온 그들은 남아공에서 철수할 경우 돌아갈 모국도 없다.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떠나 이같은 배경 속에서 제도로 정착된 아파르트헤이드의 철폐는 정치체제의 개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체제 청산을 위한 개혁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제국주의시대의 잔재인 아파르트헤이드를 고수하며 시대의 대세에 역행한다는 것도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만델라의 석방이 이런 시대조류의 산물임은 물론이다.
데클레르크 대통령과 집권 국민당내 개혁파가 만델라에게 바라는 바는 『흑인에 대한 백인의 지배를 종식하는 대신 백인에 대한 흑인의 통치를 막아달라』는 주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흑인 반정부단체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무장투쟁노선과 미국 및 EC국가들의 경제제재조치를 철회시키기 위해서 아파르트헤이드를 폐지할 용의가 있지만 다수 흑인에 의한 통치만큼은 결코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보수·개혁을 불문한 대다수 백인들의 입장이다.
반면,ANC와 줄루인카타당 등 흑인 정치세력들은 궁극적으로 1인1표제의 보통선거제 채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다수 흑인(2천7백만)의 소수 백인(5백만) 지배를 뜻한다는 점에서 백인들의 주장과는 합치되기 힘든 요구이다.
이처럼 깊게 패인 흑백 인종간의 골을 메우고 흑백 인종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남아공의 미래상을 그려내는 일이 27년 만에 석방된 만델라가 해내야 할 과업이다. 복역기간 동안 40대의 장년에서 70대의 노인으로 변모한 만델라는 이 어려운 일을 맡기 위해 신화의 주인공에서 냉엄한 현실의 정치인으로 또 한 번의 변신을 해야 했다. 그가 주창해온 「흑백 평등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선 20대의 대학생 시절부터 쌓아온 「만델라의 신화」보다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기술이 더욱 유용했기 때문이다.
ANC 부의장으로 현실정치에 복귀한 만델라에게 우선 급한 일은 ANC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ANC의 기존 무장투쟁노선을 지지함으로써 백인들을 분노케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세력기반이 구축된 지난 5월 만델라는 데클레르크 백인 정부와의 협상테이블을 마련했고 ANC의 무장투쟁노선을 종식시켰다. 데클레르크 또한 흑인 정치단체의 합법화를 포함한 괄목할 개혁조치를 취함으로써 만델라와의 협조체제를 공고히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흑인 자치의 나탈주에서 총 3천여 명의 사망자를 낸 ANC와 줄루인카타당의 주도권 쟁탈전과 3천여 명의 흑인 정치범 및 3만여 명에 달하는 정치망명자의 사면문제로 만델라와 데클레르크의 대화는 현재 난관에 봉착해 있다.
이런 점에서 분명 남아공의 미래를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두 사람의 협상테이블에서 피부색과 핏줄을 초월한 이상적 공동체가 설계되기를 기대하는 시대의 요청과 추세를 고려할 때 남아공의 미래는 결코 어둡기만 한 것도 아니다.<김현수 기자>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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