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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관­./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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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관­./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0.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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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동강 조수호이종남 법무장관께

먼저 유임을 축하합니다.

대폭 개각의 와중에서,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신임 장관들에게로 쏠려 있습니다만,유임 장관들의 면모도 새 내각이 짊어진 새해 국정의 방향을 점치게 하는 주요 지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경우 장관의 유임은 정부의 이른바 공권력행사 양상에 변함이 없을 것임을 말해준다고 하겠습니다. 당연히 「범죄와의 전쟁」도 지금대로 계속하게 될 줄로 압니다. 세밑에 굳이 이런 글을 쓰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나는 지난 여름(8월11일자)에도 장관 앞으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제인권협약 가입을 반기며,협약에 걸맞는 구속영장의 실질심사제 등 형사법제의 개혁이 시급하고 또 불가피함을 말했던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법무부로서도 입법작업을 진행중이라고 해서 적잖이 기대를 걸기도 했습니다만,이번 정기국회가 끝난 지금까지 아무 결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정기국회는 그런 개혁입법과는 거리가 먼 법률을 만들어내는 데 그쳤던 것입니다.

그런 법률 중에서 나는 특히 「특정 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출판물 등으로부터의 피해자 보호)에 대하여 장관의 재고를 요청하고자 합니다. 특정 강력사건의 피해자나 신고자·고발인의 실명보도를 일절 금지한 이 규정이야말로 가공할 법만능사상과 비뚤어진 언론관이 빚어낸 졸속입법의 한 표본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혹시 장관은 이 규정이 국회수정안으로 삽입된 것이란 경위를 들어 발뺌을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징역」 등 벌칙까지 곁들였던 그 수정안은 정기국회 회기말에 불쑥 나와서 여론을 수렴할 겨를이 충분치 못했고,그것은 경찰의 각본대로였다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이 관측이 사실이라면,검찰이 여론을 기습한 셈이 됩니다.

특례법 제8조를 읽어 보면,그 원형이 58년에 제정된 구소년법 제61조(현행 제68조)의 보도금지 및 벌칙조항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두 법조문의 글귀까지 똑같은 것입니다.

또 구소년법의 원전이 일본 구소년법 제61조인 것도,이 조항의 글귀로 보아,명백합니다. 그러나 패전 뒤 일본의 소년법은 제61조의 보도금지는 그냥 두되 벌칙조항은 삭제했습니다. 그 조항이 언론자유를 해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하필 일본의 구법을 본떠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뿐 아니라,그 일제 잔재를 확대 재생산하려 한 것이 이번 특례법 제8조,특히 그 수정안의 벌칙조항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입법기술 수준이 그 정도뿐인가 싶어지기도 합니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일본 소년법의 벌칙없는 보도금지 규정에 대한 일본신문들의 대응이 어떠한지도 참고삼아 설명하겠습니다. 일본 신문협회는 그 규정대로 익명 보도를 원칙으로 하되,①도주중 재범위험이 큰 때 ②공개수배중인 때는 소년범의 실명을 보도한다는 방침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소년법의 정신과 도주범 체포·재범방지 등의 공익을 비교하여 실명보도 여부를 자율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률적인 법규정에 비추어서는 실명보도가 어디까지나 위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소년범을 포함한 대 탈옥사건이 일어나,「범죄와의 전쟁」을 중간결산할 시점에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소년범의 도피가 계속중인 때에도 그는 익명이어야 합니까. 공익에 충실해야 할 기자의 논리는 실명보도를 요구합니다. 기꺼이 소년법의 벌칙을 무릅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같은 법과 논리의 상충은 특례법 제8조에서 더욱 심각합니다. 소년범의 익명보도 원칙은 모든 사람이 일단 수긍하지만,강력범 피해자 등의 일률적인 실명보도 금지는 그렇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규정은 공인의 경우에도 익명을 요구합니다. 공개재판 보도를 익명을 쓰라고 합니다.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고는 기사를 쓸 수 없는 사건의 예외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첨단적인 프라이버시 이론을 갖다대도 지나침이 없는 것입니다. 정부가 범죄보도를 범죄시한다는 말을 들어 쌉니다.

문제는 법이 논리의 세계를 지나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법은 지켜질 수도 없고 실효적일 수도 없습니다.

이 점은,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소년법이나 이번 특례법이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아무리 소년법이라도,익명보도의 원칙만 밝히고 예외의 여지를 남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례법은,소년법과도 성격이 다르므로,실명보도에 신중을 당부하는 주의규정으로 족했다고 봅니다. 그밖의 것은 자율과,보도논리에 맡겨야 하고 그것이 순리일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익명보도를­소년범과 성범죄 피해자의 익명보도가 이루어져온 것은 법규정보다는 자율적인 논리규정의 결과였음을 생각해야 할 줄 압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국민들의 「알 권리」와 「알리지 않을 권리」,그리고 언론의 「알릴 의무」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언론의 자율규제와 논리규정이,앞으로 더욱 세련되고 엄격해져야 함은 물론입니다만,성급하고 획일적인 실명보도금지 입법이 그 조화를 찾는 길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런 법이 있다면,개정해 마땅합니다.

이점,장관의 심사숙고를 바라마지 않습니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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