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 말맞춘 「젊은영국」개막/대처리즘과 새 활력조화 애써/유럽통합 전진적자세 취할 듯/곡예사 아들의 입지전 화제… 총선관문 통과 관심90년은 2차대전 종전이래 분단돼온 독일의 통일로 「하나의 유럽」이라는 원대한 실체가 보다 가시화되고 촉진된 해이다. 이 추진력을 발판으로 EC(유럽공동체)의 경제·정치통합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12월초 영 불간 도버해협 해저를 꿰뚫는 유러터널이 개통됨으로써 섬나라 영국은 이미 물리적으로는 유럽대륙과 한몸이 됐다.
이같은 변화를 배경에 두고 지난달 28일 영국의 제52대 총리에 공식 취임한 존·메이저(47)는 90년대의 영국을 이끌 지도자,더 나아가 유럽의 질서를 새롭게 잡아나갈 주역의 한사람으로 떠올랐다.
물론 집권여당인 보수당 당수 경선만으로 총리가 된 메이저가 진정한 「영 국민의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18개월 이내에 치러질 총선이라는 관문을 무난히 통과해야만 한다. 그러나 1894년 로즈베리경 이후 근 1백년만의 최연소 영 총리라는 신선함과 라이벌 닐·키녹 노동당 당수마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한 그의 인간적 매력,또 영국의 당면과제인 경제난을 타개할 경제통이라는 점 등에서 그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의 입신양명 과정은 계급귀족적 잔재가 여전한 영국사회에서는 가히 파격적이다. 서커스단 공중곡예사 출신의 아들로서 가정형편상 고교를 중퇴해야 했으면서도 정계에 진출한지 11년만에 일약 만인지상의 재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부인 노마여사조차 당초 남편이 총리가 되는 것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일축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메이저의 총리 등장은 11년반동안 장기집권해온 대처시대의 종언과 아울러 매너리즘의 나락에 빠져들던 영국이 활력을 되찾을 계기를 마련했다는데서 가장 큰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금세기 들어 두차례의 대전을 모두 승리로 이끈 영국이지만 이후 미 소를 두 축으로 한 얄타체제의 냉전구도 속에서 영향력을 상실해온 게 사실이다. 대영제국의 「젖줄」인 식민지를 차례로 상실하면서 판로를 잃은 영국기업들의 도산이 속출했다.
전후복구에 나선 유럽대륙 각국들이 자국보호주의의 벽을 높이 쌓는동안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는 최고의 복지국을 꿈꿨던 영국은 생산성 저하투자의욕 상실의 악순환과 이로 인한 노조운동의 극렬화로 소위 「영국병」은 도져만 갔다.
이때 나선 것이 「철의 여인」 마거릿·대처이다. 75년 히드 전 총리를 물리치고 보수당 최초의 여당수가 된 대처는 자유시장경제의 기치를 내걸고 79년 노동당정권에 맞서 역시 최초의 여재상이 됐다.
철저한 자유경쟁의 경제철학을 바탕으로 한 대처리즘으로 안을 단속한 대처는 같은 보수주의색채의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과 보조를 함께 하며 유럽내에서의 독자적인 영국의 위상을 고수해 나갔다. 82년 포클랜드(말비나스)전 승리는 이러한 대처의 정책들이 실효를 거두었음을 세계 만방에 알린 사건이었다.
그러나 85년부터 유럽대륙에서 일기 시작한 변화의 기운은 타협을 모르는 대처에게는 치명적이었다. 크렘린 동토에서 움트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싹을 서방 지도자로서는 맨 처음 감지한 그녀였지만 이로 인한 유럽통합의 가속화는 수용을 거부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의 유럽」시대가 개막된 90년에 대처의 퇴진은 예정돼 있던 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메이저는 「대처이후」의 구도를 위해 바로 그녀가 예비해 놓은 지도자였다. 「작은정부」를 지향하는 그녀의 시책에 따라 정부 긴축재정을 담당한 재무차관을 거쳐 외무장관·재무장관으로 중용돼 후계자 수업을 쌓았다.
따라서 메이저의 영국이 EC 통합에 급격한 변화를 보일 것으로는 전망되지 않는다.
다만 대처처럼 국익차원에서 영국의 주권을 견지하면서도 전임자 시대보다는 보다 유연한 전진적 자세를 취할 것이라는 관측을 낳게 한다.
본인도 취임 첫 의회연설에서 유럽통화단일화(EMU)에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으나 실제로는 대처를 설득해 EC통화제도(EMS)에 가입케한 장본인이 바로 그라는 사실에서 이러한 전망을 가능케 한다.
이제 메이저의 시급한 과제는 제색깔 찾기이다. 그의 은발에 빗대 「무채색의 정치인」이란 비난도 있는데서 보듯 대처리즘의 외피를 벗고 얼마나 빨리 메이저리즘을 구축할 수 있는 가에 그의 정치적 롱런여부가 달렸다.
이런 점에서 그의 첫 조각내용은 그런 의도를 잘 담고 있다는 평이다. 자신 밑에서 차관을 지낸 라몬트를 재무장관에 승진시키고 허드 외무를 유임시켜 기존의 정치·경제정책의 틀을 어느정도 유지시킬 생각이면서도 문제의 지방세법을 담당할 환경장관에는 대처퇴진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헤슬타인 전 국방장관을 임명,대처리즘이 남긴 환부를 도려낼 의지를 보이고 있다.
「늙은」영국을 새롭게 하는 길은 「올바른」 다음 세대에 달려있다고 믿고 있는 메이저는 교육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효과가 나타날 때 쯤이면 그는 유럽에서도 가장 완숙한 정치지도자가 돼있을 것이다.<윤석민기자>윤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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