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정책정당 전환 국민적압력 절실아마 오늘을 살고있는 이 땅의 생각있는 국민치고 현재 한국의 정치구도,특히 그 정당체제의 실상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된다. 민정계의 정권 재창출을 향한 집념과 양김씨의 정치적 야심의 무리한 합성품인 거여,그리고 지역중심·보스중심의 절름발이 야당인 평민당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현재의 제도권 정치구도는 누가 보아도 그리 볼품있는 모습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개인이나 집단의 대권욕의 산물일뿐,국민의 마음을 실은 정치의 틀이 아니기 때문에 규범적으로 설득력이 없을 뿐더러 현실적으로도 안정적인 구도가 되지 못한다.
한때 순진한 백성들은 민자당의 존재를 「기왕지사」로 돌리고,평민·민주·통추회의 3자간의 야권통합에 기대를 모아보기도 했지만 이 바람마저 정치인들의 당리당략에 휩쓸려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이제 바야흐로 내년 3월 지자제선거를 앞둔 마당에 가장 우려되는 바는,혹시 민자당이 비호남권을 석권하고 평민당이 호남권에서 압승해서 양당이 전국을 지역적으로 분점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정치현실속에 현재의 어긋난 정치구도가 더 깊게,또 더 부정적인 모습으로 뿌리를 내려 앞으로 바람직한 정치질서를 마련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다소 비현실적일지 모르나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정당체제를 모색하고,또 이를 성취하기 위한 방도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오늘 우리가 지향해 봄직한 정당체제는 중도우파 여당,중도적 제1야당,중도좌파인 진보정당의 3당체제가 아닌가 한다. 이 정치구도는 일단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구상된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보스중심,지역중심의 정당체제를 탈피할 수 있을 뿐더러,권력동기와 연고주의 등으로 얽히고 설킨 현재의 정당체질을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하리라고 본다.
무엇보다 정당마다 정제된 이념을 표방하고 정책적 쟁점을 중심으로 정당간의 정치적 경합을 벌일 때 우리의 정치마당은 동태성과 생산성을 아울러 높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오늘 이땅의 여 야 그리고 재야세력들은 허구적인 정치적 구호와 공약만을 남발할 뿐,민생동기에서 비롯된 세련된 이념이나 정책대안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이념적 스펙트럼을 중심으로 한 정당 개편구도는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해 매우 절실한 요청이라 하겠다.
특히 극우와 극좌가 무력화되고 주요 정당간의 이념적 편차가 지나치게 벌어지지 않는 경우 정당간의 주요 정치문제에 대한 기본적 합의가 가능하고,중도우파에서 중도좌파에 이르는 이념적 분포는 온건개혁정치의 정치적 풍토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위에서 중도우파를 여당으로 지목한 것은 현 정치구도를 감안한 예시적 잠정적 배열일 뿐,중도적 제1야당이 여당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한국의 현실에서 볼 때,보수·진보의 양당체제 구축은 아직 때가 이르므로 건강한 보수와 중도의 양대당과 제3당으로서의 제도권 진보정당을 상정해 본 것이다.
중도로 수렴이 가능한 좌·우정당들은 대체로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실용주의적 이념을 표방하므로 교조주의의 멍에에 빨려들어갈 위험이 없다. 따라서 이렇게 되면 현재 한국정치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정한정치,감성정치의 먹구름에서 벗어나 이성정치의 대로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현실은 이상의 새로운 정치구도를 현실화시키기에 너무나 각박하다.
계파간의 내쟁만 일삼고 「구국적차원」의 개혁정치를 구사하기는 커녕 여차직하면 공안정국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여당,뚜렷한 정책노선 없이 이따금 민중주의에 편승하여 보수적 체질을 위장하는데 급급한 제도권 야당들,아직도 교조적 급진주의의 그늘에서 때 지난 과격한 몸짓만을 되풀이하는 일부 재야등 그 어떤 정치세력도 그들이 도대체 「왜」「어떻게」 정치를 할 것인가에 대한 이념적 정책적 대안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정치판에서 기껏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점점 퇴색해가는 3김씨의 카리스마와 권력동기에서 빚어지는 때묻은 정치관행이 있을 뿐이다.
최근 한가지 고무적인 것은 진보정당인 민중당이 기존의 거칠고 무책임한 체제변혁논리에서 벗어나 점차 일상적인 민생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점이다.
그러면 오늘의 굴절된 정치구도를 개선하기 위해 생각해봄직한 방도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그 논의의 전제가 되는 생각인즉,기존체제 및 그 보스들 스스로에 의해 현재의 정치구도와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제도권 정치문화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대권의 환상만을 쫓는 기존보스들의 경우 일단 현구도를 중심으로 자기세력을 확장하려는 생각에서 한걸음도 벗어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계개편의 하나의 계기는 주요정당내의 차세대 지도자들에 의한 새 물결이 아닐까 한다. 비록 그들이 보스들의 정치적 배려에 의해 정치권에 충원되고,또 정치적으로 부상되었을지라도 이제 보스들의 품안에서 벗어나 정치구도의 개편과 당내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하여 그들간의 당내 제휴내지는 당간의 제휴를 시도할 때라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개혁정치를 향한 이들의 정치적 결단과 용기를 촉구한다. 몇차례 이 방향의 노력이 있었던 듯하나 현실 정치적 위험부담과 공천권과 정치자금을 손아귀에 거머쥐고 있는 보스들의 엄포에 눌려 다시 숨을 죽이고 있는 형국인 듯 한데,생각 있는 국민들은 기존정치질서의 혁파를 위한 차세대 지도자들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음을 이들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로 언론과 뜻있는 지식인들의 곧고 매운 목소리가 요구된다. 이러한 점에서 일부 언론이 양김씨의 대권경쟁의 이면비화에나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셋째로 우리가 이 모든 것에 앞서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주체적 시민문화의 창출을 통한 국민적 압력이다. 우선 시민들은 선거를 통한 유권자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 투표에 의한 반시민적 정치인에 대한 엄중한 제재와 정치적 세대교체,그리고 정치적 틀의 변개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의 정치질서의 창조적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주체적 시민운동이 전개될 필요가 있다. 시민포럼,공익단체 및 시민운동 등의 참여를 통한 정책토론과 정치감시 및 정치평가 등은 「참여에 의한 변화」를 유도할 것이다. 정치가 움직이면 모든 일이 된다는 생각 대신에 내가 움직여서 정치를 고쳐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될 때,국민은 「객석」에서 「마당극」의 장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마침내 시민문화에 의한 반시민적 정치문화의 극복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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