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북한 수교」 물꼬… “굴욕외교” 파문/“비상식적 행각” 불구 회담진전/「전후보상」 수용주장 물의빚어/「직책없는 권력」 관련 일 정치 후진성 노출 계기돼일본에는 90년의 세계를 움직였다고 할만한 정치가가 없다.
경제적으로는 미국을 곤경에 몰아넣고 세계시장에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그늘에 가려져 「억울할」정도로 발언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한사람을 거명한다면 북한의 두껍고 높은 장벽에 「바람 구멍」을 뚫었다는 가네마루·신(금환신·77) 전부총리일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적잖은 비난과 파란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비상식적 외교」라는 그의 방북외교로 북한이 사상 처음으로 서방측 국가의 일원인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자고 제안,내년 1월말부터 본회담이 열리게 돼 있다.
가네마루는 「90년의 인물」 반열에 오를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가 오늘의 일본을 움직이는 최고의 실력자 가운데 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국제정치무대에서의 일본의 왜소한 위상 때문에 국제적으로는 무명의 인물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그는 막후협상과 흥정으로 국내정치의 조정역으로는 탁월한 수완을 갖고 있지만 외교에는 전혀 문외한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리니아모터카(자기부상열차)를 「리비아모터카」,「퍼래벌라안테나」를 「바라바라안테나」,「샤넬넘버5」를 「차넬넘버5」라고 말한다는 일화가 그의 외교무록을 대변하는 것처럼 그는 일본 정치의 안방마님으로서 군림해 왔을뿐 외교와는 아무런 인연도 관심도 없었다.
그러한 가네마루가 올해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고,이어 평양에 들어가 「바람구멍」을 뚫은 것은 자신의 의사가 아니라 정부·여당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그가 평양에 가서 김일성 주석을 「각하」라고 떠받들며 인질 2명(후지산호 선원)을 풀어준데 「감읍」하고 돌아왔을 때 일본 국민들은 「굴욕외교」「신사외교」「매국외교」 등 온갖 형용사를 총동원해 가며 비난을 퍼부었다.
한국과 미국측도 공동선언문속에 「조선은 하나」라는 북한의 어거지를 수용해 가면서 핵사찰 수용을 관철하지 못한데 대한 불쾌감을 표해 그는 안팎 곱추처럼 한동안 기를 펴지 못했다.
그러나 그후의 양국 관계는 그가 뚫어놓은 「바람구멍」의 작용 탓인지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전돼 가고 있다.
국교정상화 교섭을 위한 3차례의 예비회담은 난항하는 것 같았으나 타협이 이루어져 내년 1월말부터는 본회담이 열리게 됐다.
예비회담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던 「전후45년의 보상」이 「경제적 제문제」란 의제속에 숨어버린 것은 어떤 형태로든 보상해 주겠다는 묵계하에 이루어진 일인데,이는 가네마루 옹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지난 9월 그의 방북 때 이 문제를 놓고 3당 공동문안 작성이 난항,방북단의 출발일정까지 늦추어지자 그는 『내가 책임질테니 받아들이라』고 지시해 이를 수용하고 말았었다.
상식과 전례의 틀에서 벗어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그가 집권당과 정부에 아무런 직책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일본 정치의 난해성이 있다. 그의 최고 전직은 부총리였고,현직은 집권 자민당 고문이며 자민당의 사조직인 다케시타(죽하등)파의 회장.
당정에 아무런 공식 직책도 없는 사람이 국사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기현상은 지난 가을로 의회정치 1백년을 넘긴 일본의 수치라고 일본인 자신들도 말하지만 이에 대한 개선대책이 없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짧은 머리에 주름진 얼굴의 볼품없는 이 정통보수파 정치인은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별다른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금맥정치,인맥정치에 잘 길들여진 그가 그 폐단으로 대권을 장악한 것도 지극히 일본 정치적인 결말이다.
야마나시(산리)현 출신의 12선 의원인 그는 현역 정치인중 가장 많은 별명을 갖고 있다.
「침기사」「책사」「요괴」「늙은 너구리」 등등. 이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침기사」인데,유도용어인 이 말은 누워서 부리는 기술로 「남의 허점을 찌르거나 뒷면 공작으로 교묘히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 많은 별명들은 그의 정치적 이미지가 나쁘기 때문에 붙은 것이어서 「국제사회의 가네마루」가 되는데 큰 장애요소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권력보다 비전과 신망을 바탕으로 한 이미지가 중요한 국제정치 무대에서 그가 내년에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그것이 일본 외교의 과제이기도 하다.<동경=문창재특파원>동경=문창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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