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을 치러가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땀을 흘리고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수사경찰관들」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많지 않을 듯하다. 그래서 「10·13 대범죄 전쟁 선포」 이래 일선 수사경찰관들이 범죄소탕전을 펴면서 때때로 야기했던 적지 않은 부작용,다시 말해서 권총의 오·남발사고라든가,실적 위주의 무리한 검거와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인권침해사례가 적지 않았던 것도 국민들은 관대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그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국민들이 안방에서마저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없게끔 설쳐대는 범죄꾼들의 기를 꺾기 위해서는 일단 힘을 과시해야 하고 거기서 오는 부작용은 국민들 모두가 나눠 책임진다는 「무언의 합의」와 그 화급한 불을 끄고 나면 수사경찰관들도 스스로를 반성해서 수사상의 무리한 행동은 자제하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성연쇄살인 9번째 사건」의 수사과정을 지켜본 우리는 경찰수사가 너무나 조급하고 무리함이 많았다는 심증을 가진 데다가 이러한 성격의 수사가 재발하면 여론이 나빠지리라는 우려 때문에 수사경찰관들에게 고언의 충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86년 9월,첫 사건이 발생한 이래 4년2개월여 동안에 부녀자들,그 중에서도 20대와 10대의 처녀와 소녀들이 주로 희생된 화성의 부녀자 추행살해사건은 경찰에게는 수사력을 비웃는 더없이 치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9번째 사건이야말로 범죄와의 전쟁이 한창 진행중인 지난 11월15일 발생했음을 생각해보면,사건해결을 서둘러야겠다는 수사경찰관들의 초조한 마음을 충분히 짐작할 만도 하다. 상부의 독촉 또한 심했으리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가혹행위와 강압행동을 저지르는 구태의연한 수사방식을 구사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물증도 없이 범인을 조작,사건을 해결한 것처럼 발표한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까지 은폐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단 말인가.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경찰의 무리한 수사사례들은 30대 용의자의 열차투신자살사건·용의자로 3차례나 연행된 고교생의 몸에 드러난 가혹행위 흔적,진범으로까지 발표됐던 윤 모군의 변호사 접견서 허위작성·보고사실 등에서 역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진짜범인을 잡아 수사력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경찰이 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죄없는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수사과정에서 인권이 최대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수사가 그렇게 되려면 과학수사능력을 갖춘 전문성의 함양 및 범죄수사와 인권보장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양면성을 깊이 인식할 줄 아는 수사경찰관들의 자질향상에 있다고 해야 하겠다. 「화성사건」이야말로 마구잡이 수사나 육감 내지는 주먹구구식 수사가 더 이상 통할 수 없는 시대상황 속에서 수사경찰관들의 위상이 어떤 것인가를 모든 수사경찰관들이 냉정하게 반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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