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살려주세요” 아직 생생/충격에 장례후 쓰러져/도미포기 불우이웃위해 사회사업가 결심/“범죄없는 세상 오면 딸 죽음 헛되지 않을 것”지난 11월9일 양평에서 발생한 일가족 4명 생매장 살해사건은 올해의 각종 범죄중 가장 잔혹하고 충격적인 것으로 국민들을 울리고 치를 떨게 만들었다. 『아저씨 살려주세요』하고 애원하며 죽어간 최서연양(5)의 목소리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귓전에 남아 우리 모두가 공범인 듯한 괴로움을 안겨주고 있다.
아버지 할머니 이모할머니를 한꺼번에 잃고 어리고 귀여운 딸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서연양의 어머니 유은주씨(33·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286의 352)에게 90년은 지워버리고 싶은 악몽의 해였다.
11월14일 서연양을 경기 포천의 안식일교회 재림공원 묘원에 장례치른 뒤 일요일마다 무덤을 찾아갔던 유씨는 25일 남편 최영규씨(36·예수재림방배교회 담임목사) 서연양의 동생 지훈군(4)과 함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우고 마르지않는 눈물로 너무나 일찍 생명을 빼앗긴 딸과 약속을 했다. 「누나 하늘나라에서 만나요. 안녕」 「서연아,재림의 아침에 엄마 아빠 지훈이와 꼭 만나자」 서연이의 얼굴사진이 새겨진 비석을 세운 유씨 등은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 아빠가 되기위해 불우한 이들을 돕는 사회사업을 해나가기로 결심했다.
유씨는 『하루 50여통씩 걸려오는 국민들의 위로전화와 교인 친지들의 방문,딸의 무덤에 조화를 놓고가는 따스한 위로와 격려가 몸을 추스리게 해주었다』며 『남편의 교회일을 도우며 도움을 필요로하는 불행한 이들에게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 남편 최씨가 86년부터 2년간 청년목사로 근무한 워싱턴 한인교회로 다시갈 예정이었던 부부는 딸의 죽음을 계기로 남은 삶을 범죄와 부패로 일그러진 이땅에서 딸의 죽음을 의미있게 승화시키는데 바치기로 한것이다.
장례후 최씨는 교회에 나가는 등 일상생활에서 목자로서의 의젓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으나 청량리 위생병원 응급실에서 간호사로 일해온 유씨는 충격과 허탈감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쓰러졌다.
유씨는 장남감 인형 침대 피아노 등 딸의 유품이 그대로 정돈돼 있는 서연이의 방에서 시간이 갈수록 짙어지는 그리움 속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상실의 아픔을 이기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그런 탓인지 딸의 죽음은 그냥 지나쳤던 불행한 이들의 아픔이 자신의 것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즐겁게 뛰놀며 재롱을 떨어주던 딸의 모습은 이제 아무데서도 끝내 찾을 수가 없다.
90년에는 샛별룸살롱 살인사건·미용실 연쇄강도 등 연초부터 각종 흉악범죄가 빈발,국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었고 지난 10월13일 마침내 정부가 대범죄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으나 일가족 생매장사건·화성 여중생 살해사건·공인회계사 피살사건·택시합승객털이 등 흉악범죄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서연이의 죽음은 이같은 범죄의 원인이된 사회전체의 문제를 들추어 그 책임의 소재를 우리 모두에게 묻고 제2의 서연이가 나오지 않도록 요구하는 계기로 받아들여졌다.
유씨는 온몸으로 슬픔을 견디며 『딸의 죽음으로 내가 사회에 대해 새롭게 눈을 떴듯이 세상사람들이 서연이를 잊지않고 범죄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면 서연이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또 울먹였다.<이재렬기자>이재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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