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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쌀」 전말/한기봉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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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쌀」 전말/한기봉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0.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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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는 지난 7월부터 12월18일까지 6개월 동안 남북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있었음을 알리는 기사원고가 잠자고 있었다.그 기사는 기독교계의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분부와 한국일보사가 국민들로부터 모금한 사랑의 쌀 1만가마를 북한측이 받아들여 지난 7월27일 남포항에 도착,북한주민들에게 나눠줬다는 사실과 경위를 소상히 밝힌 것이었다.

그러나 기자는 특종을 놓쳤다. 원고지 빛까지 바랜 기사는 12월18일 석간에 이어 19일자 한국일보에 보도됐다.

한국일보사가 특종을 잠재운 이유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북한은 사랑의 쌀을 받으면서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본부에 그들이 인수사실을 통보할 때까지 공개하지 말 것을 요청했고 이 운동을 거사적으로 후원했던 한국일보사는 남북대화에 미칠 파장을 고려,보도를 자제하며 회신을 기다렸다.

그러나 세계적 뉴스 가치가 있기도 한 이 사실은 12월10일자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와 18일자 마이니치(매일)신문 등 일본 언론이 연이어 터뜨림으로써 공개되고 말았고 국내의 전 석간신문이 이를 인용,보도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일보사에는 20여 만 명에 이르는 성금기탁자들의 전화문의가 빗발쳤다. 한국일보사는 이미 기정사실화된 것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었다.

이상과 같은 보도경위는 구태여 밝히지 않아도 될 일이며 실낱같은 변화라도 남북관계의 개선이 중요한 우리에게 한 언론의 특종 낙종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 전말을 굳이 밝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한 조간신문은 20일자에 쌀이 전해진 사실을 보도하면서 한국 기독교계가 쌀과 함께 치약 칫솔 등 생필품까지 함께 보낸 것처럼 잘못 부각시켰다. 이 보도 이후 사랑의 쌀 문제는 이상하게 꼬여가더니 한 석간과 앞서의 조간지가 24일자와 25일자에 북한측 접수창구였던 재미동포 박경윤씨 인터뷰 기사를 통해 「남이 비공개조건을 깨고 일부 언론이 과장·허위보도했기 때문에 사랑의 쌀을 반납하겠다」고 한 박씨의 발언을 크게 보도했다.

인터뷰 기사는 마치 이 운동이 실패했으며 오히려 남북 관계개선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강조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비공개조건이 깨진 것은 남북 관계개선에 2중적 입장을 취한 일본 언론의 「훼방」 탓이었으며 자존심이 손상된 북한이 박씨를 통해 반납설을 흘린 것은 박씨가 언급했듯 생필품도 받았다는 보도가 빌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당국은 아직도 공식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이 전개되는 동안 이 운동을 오히려 백안시했거나 사랑의 쌀의 본질인 동포애와 인도주의 정신을 도외시했던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깊은 사려와 분별없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만 무책임하고 부정적으로 앞질러 부각시키는 보도는 우리 언론 전체를 위해 불행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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