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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대홍수 피해 정호운씨(90년 사건과 사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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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대홍수 피해 정호운씨(90년 사건과 사람:5)

입력
1990.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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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 상처위에 병마의 고통까지/창고 개조방서 항암 투병/완파 가옥은 무허가… 보상비 한푼도 못받아/“진학 포기 돈벌이 두 아들 생각 가슴 미어져”9월10일부터 사흘간 서울 경기 강원 충청 등 중부지역을 강타한 집중호우는 최고 5백여㎜의 강우량을 기록하더니 9월12일 새벽 끝내 행주대교 아래 한강 둑을 터뜨려 을축년 대홍수이래 65년만에 최악의 수해를 일으켰다.

전국적으로 사망 1백19명 등 1백75명의 인명피해를 내고 18만여명의 이재민과 3천8백여억원의 재산피해를 낸 올해 수해는 상습침수지역의 주민들로부터 인재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경기 고양군 지도읍 신평리 한강둑 2백50여m가 터져나가 지도읍 일산읍 송포면 등 3개 읍면 83개 마을이 침수되고 1만5천여가구 5만여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한강 둑은 20여일만에 완전복구돼 지금은 도로공사중인 트럭소리가 요란하지만 수재민들의 세밑은 늘어나는 빚과 내년농사 걱정으로 시름이 깊어간다.

고양군 일산읍 장항5리 438에 사는 정호운씨(52)는 수마가 할퀴고간 상처위에 병마까지 겹쳐 누구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지붕까지 삼킨 물이 사흘만에 빠진 뒤 집으로 돌아와 부지런히 몸을 놀리던 정씨는 갑자기 심한 고열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병원에서 목임파선에 악성종양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은 정씨는 절망에 빠졌다.

남의 땅에 농사를 지으며 지난해부터 1톤짜리 중고트럭을 구입,마을 농산물을 서울에 내다팔아주고 운임을 받아 생계를 꾸려왔지만 모아 놓은 돈이 있을리 없었다.장기구호 대상자로 분류돼 3주마다 1주일씩 입원,항암치료를 받는 비용은 내년 3월까지만 무료이다.

가족들은 폐허가 된 집 앞에 텐트를 치고 살 수밖에 없었고 11월말이 다돼서야 창고로 쓰던 3평짜리 건물에 구들을 놓고 겨울바람을 피해 들어갈 수 있었다.

군청에서 임시거처로 비닐움막을 지어주긴 했지만 통풍이 안되고 습기가 차 쓸 수가 없었다.

정씨에게 돌아온 것은 남의 땅 2백여평에 심었던 아욱에 대한 보상비 3만6천원이 고작이었으며 3년전 이사왔던 집은 무허가 건물이어서 완파가옥에 대한 보상비도 못받았다.

영농자금 대출한도가 2백만원에서 8백만원으로 늘어났고 주택건축 특별융자금은 6백50만원까지 대출할 수 있지만 아무리 이자가 비싸더라도 농사를 지으려면 빚을 낼 수밖에 없는데 환자인 정씨는 돈을 꿀 곳도 없다.

군청에서는 완파가옥의 경우 임시거처인 움막을 내년 봄에는 자진 철거하고 집을 짓도록 종용하고 있어 집지을 돈이 없는 사람들이 완파로 판정된 가옥을 반파로 해달라고 사정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있었다.

구호양곡도 너무 오래 묵어 다른 쌀을 섞지 않으면 밥을 지을수 없는 실정이다.

정씨의 부인 김장순씨(41)는 한푼이라도 벌려고 병든 남편을 보살피면서 하루 8천원벌이 취로사업에 꼬박꼬박 나가고 있지만 그나마 곧 끝나게 돼있다.

병으로 인한 고통과 항암제 투여로 머리가 몽땅 빠지다시피 한 정씨는 딸 현희양(13·고양여중 2)의 병수발을 기특해 하면서도 취로사업나간 부인과 가정사정으로 일찌감치 진학을 포기하고 집안일을 돕다가 수해 뒤에는 아버지대신 서울 경동시장 야채상점에서 돈벌이를 하는 두아들 현수(18) 현필군(15)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고양=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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